[빛과 소금] 코로나19와 신앙심

입력 2021-04-24 04:03

코로나19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몇 개월만 지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방심했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인류는 역사상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의 고통이 왜 발생했는지, 그것이 자신과 종교와 정신 세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해왔다. 종교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종교에 더 깊이 몰입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주간 리포트 ‘넘버즈’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삶과 고난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비영리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가 14개 경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종교와 가족 관계 등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가 눈길을 끈다.

조사 대상 14개국 국민 모두 종교적 신앙이 ‘강해졌다’는 응답이 ‘약해졌다’는 응답보다 높았다. 이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감염병이 세계인들의 종교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믿음이 더 강해졌다’는 응답은 미국이 28%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스페인 16%, 이탈리아 15% 등의 순이었다. 14개국의 평균값은 10%였다. 한국은 ‘믿음이 강해졌다’는 응답이 10%에 불과했고, ‘약해졌다’(9%)는 답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확산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국민의 종교성이 강해진 점은 주목할 만한 지표이다. 미국의 기독교 그룹 중에는 복음주의 백인 기독교인의 49%가 ‘코로나19 이후 믿음이 성장했다’고 응답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가톨릭 교인의 35%, 복음주의권 외 백인 개신교인의 21%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기독교인 아닌 종교인의 경우 5%만이 ‘코로나19로 인해 자신의 믿음이 성장했다’고 답변해 다른 그룹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기독교인이 재난 등의 커다란 위기 경험을 통해 신앙적 의미를 찾으려 하고, 그 과정에서 신앙 성장을 도모하려는 의향이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코로나19가 종교적 신앙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는데,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그룹의 ‘종교적 신앙심이 더 강해졌다’는 응답 비율이 그 외 그룹보다 높게 나타났다. 스페인은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그룹의 49%가 코로나19로 인해 종교적 신앙심이 더 강해졌다고 응답했지만 그 외 그룹에서는 6%로 답해 두 그룹 간 차이가 43% 포인트로 가장 컸다. 한국은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그룹에서 신앙심이 강해졌다는 비율이 30%로 중간 정도 수준이었으나 스페인이나 미국보다는 크게 떨어지는 수치를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족 결속력 변화 정도에 대해서는 14개국 응답 평균이 ‘더 강해졌다’ 32%, ‘더 약해졌다’ 8%로 코로나19가 가족 관계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관계가 더 강해졌다는 응답률에서는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은 18%로 일본과 함께 가족 결속력에 있어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년이 넘도록 전 세계가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서양은 팬데믹으로 인한 고통이 종교적 성찰로 이어지는데, 왜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그렇지 못한지 깊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위기 상황에서 종교가 삶의 의미성을 다시 발견하고, 세상에 위로와 희망을 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그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