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만들고자 했던 바람, 지킬&하이드 열풍의 원동력”

입력 2021-04-26 00:37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오디컴퍼니는 ‘지킬&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등 히트작을 통해 한국 뮤지컬계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대표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여러 작품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이한결 기자

2004년 7월 24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 배우 조승우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하이드’의 한국 초연 첫 공연이 열렸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폭발적 반응을 보였고 이는 ‘뮤지컬 대중화’의 신호탄이 됐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한국 뮤지컬 시장의 외연 확장은 이 작품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킬&하이드’를 비롯해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등 여러 히트작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견인해 온 오디컴퍼니가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봤을 때 ‘지킬&하이드’ 초연 첫날의 관객 반응이 가장 기억납니다. 지금처럼 SNS가 활발하지 않았는데도 공연 직후 신드롬이 일어났거든요.”

신춘수(53) 대표가 이끄는 오디컴퍼니는 2001년 4월 6일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로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명인 오디(OD)는 ‘오픈 더 도어’(Open the Door)의 약자로 관객과 무대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000년대 전반 한국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맘마미아’ 등 선배 프로듀서들의 대작 라이선스 뮤지컬이 자리를 잡을 때였어요. 선배들과 다른 색깔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2004년과 2005년 각각 초연된 ‘지킬&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오디가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됐죠.”

오디컴퍼니는 해외 뮤지컬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 대신 재창작에 가까운 논 레플리카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공을 이끌었다. 신 대표는 조승우 김준수 홍광호 등 인기 있는 남자 배우를 앞세운 스타 시스템을 뿌리내렸다.

그는 “오디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40여편을 만들었다. 롱런하는 흥행작도 있지만 실패한 작품이 더 많다”면서 “프로듀서라면 작품의 손익을 따져야 하는데, 오디 설립 이후 첫 10년간 나는 그저 공연을 좋아하는 ‘공연인’이었다”고 말했다.

오디에 흥행 레퍼토리들이 축적되자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로 처음 도전장을 낸 이후 2011년 ‘닥터 지바고’와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가 들리면 소리쳐) 등 여러 작품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국내 뮤지컬 프로듀서 중 유일하게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의 정회원이 됐다. 하지만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드림걸즈’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 못했고 리딩(leading)프로듀서로 나선 ‘닥터 지바고’와 ‘할러 이프 야 히어 미’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조기에 종영됐다. 2015년까지 이어진 그의 도전은 막대한 적자로 끝났고 국내 제작사마저 자금난을 겪게 했다. 그에게는 ‘한국 뮤지컬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생겼다.

“‘드림걸즈’를 준비할 때 브로드웨이의 공동프로듀서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예술하세요. 나는 돈 벌 테니까. 당신은 꿈을 꾸고 난 돈을 가질게요’라고. 당시엔 이 말이 와 닿지 않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 여러 작품을 실패한 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브로드웨이 도전을 일단 접은 그는 국내에서 오디의 정상화에 집중했다. 무모한 투자를 중단한 뒤 인기 레퍼토리를 올려 빚을 상환하고 투자자들과 관계를 회복했다. 그는 “회사에서 결제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무능한 경영자인지 알았다. 오디라는 회사 이름에 책임지기 위해 진짜 일만 했다”며 “다행히 회사는 재정적으로 탄탄해졌지만 나 자신은 강박증이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국내 비즈니스에 몰두한다고 해서 신 대표가 브로드웨이 진출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국내외 예술가들과 꾸준히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받은 ‘캡틴 니모’,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셰익스피어 원작을 모노드라마로 만드는 ‘리처드 3세’,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바그다드 카페’ 등 여러 작품이 개발 중이다.

하지만 뮤지컬 산업은 코로나19로 위기에 봉착했다. 오디컴퍼니와 PMC프러덕션, 신시컴퍼니, 클립서비스, EMK뮤지컬컴퍼니, 쇼노트 등 대형제작사 10곳은 지난해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를 출범시켰고 신 대표를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지난해 제작사들이 공연장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위해 처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재난과 마주하면서 다들 국내 뮤지컬계에 문제가 많다는 걸 절감한 거죠.”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는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합리적 제작방식을 도입해 공연이 중단되거나 취소되면 배우와 스태프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