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고종석 “불어에 완전 밀착한 ‘어린 왕자’ 번역본 출간”

입력 2021-04-22 19:03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이자 언어학자인 고종석(62·사진)이 ‘어린 왕자’를 번역해 출간했다. 고 작가는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문장가로 잘 알려졌지만, 프랑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도 유명하다.

고 작가는 지난 20일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제가 번역한 ‘어린 왕자’가 가장 뛰어난 한국어 번역본이라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렇지만 여태까지 나온 모든 번역본과 확실히 다르다.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943년 처음 출판된 후 현대문학의 고전이 됐다. 한국어 번역본도 100종이 넘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 불문학자인 황현산 김화영 등도 이 책을 번역했다.

고종석 번역 ‘어린 왕자’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문장구조다. 프랑스 갈리마르판을 원본으로 프랑스어 문장구조를 그대로 수용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라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대한 여우의 유명한 답변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다들 너무 잊고 있는 거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고종석 번역)

“그것은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황현산 번역)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김화영 번역)

고 작가는 “불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대화 사이에 지문을 굉장히 자주 넣는다. 그래서 대화와 지문의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서양 문학작품의 한 특징”이라며 “저는 독자들에게 한국어로써 프랑스어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경어(존댓말)와 평어(반말)는 원문처럼 구별해서 옮겼다. 유럽어에서 사용하는 복수 표지 ‘~들’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든지, 어린 왕자를 ‘그’ 대신 ‘그 아이’로 옮긴 것도 기존 번역본과 차별점이다. 고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의 번역에 대해 “한국어라는 옷을 입은 프랑스어다. 프랑스어에 완전히 밀착한 한국어!”라고 소개했다.

‘어린 왕자’ 번역본은 고 작가가 뇌출혈에서 회복한 후 처음 출간하는 책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여러 차례 ‘어린 왕자’를 읽었고, 한국어나 프랑스어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어나 다른 언어로도 이 책을 읽었다. 지난해에도 코르시카어로 이 책을 읽다가 번역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