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학자이자 작가인 존 스토트(1921~2011)에겐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 복음주의 거장’ ‘개신교의 실제적인 교황’ ‘2005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 이런 칭송에 걸맞게 그가 복음주의권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그는 영국복음주의연맹(BEA) 회장, 대학기독인교류회(UCCF) 총재 등으로 활약하며 ‘복음주의의 사회적 참여’ ‘성경적 연합’을 강조해 20세기 복음주의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4년엔 미국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손잡고 복음주의 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한 로잔언약의 입안을 이끌었다. 82년엔 런던 현대기독교연구소를 설립해 평신도 교육을 강화하고 기독교 내 반지성주의를 타파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제자도’ ‘기독교의 기본 진리’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겨 아직도 전 세계에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적잖다.
오는 27일 스토트의 출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를 기념하는 책들이 기독 서점가에 잇따라 나왔다. 김대조 주님기쁨의교회 목사가 쓴 ‘존 스토트와 옥한흠에게 강해설교를 배우다’(아바서원)도 이 중 하나다. 책에는 스토트 강해설교 분석뿐 아니라 그가 영국 유학과 목회 중 만난 인간 존 스토트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있다.
저자가 추억하는 스토트는 거물임에도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런던 올소울즈교회에서의 첫 만남부터 격의 없이 저자를 대했다. 일례로 그는 30대 목회 초년생인 저자에게 국적을 묻고는 “형제여, 나는 한국을 잘 압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만남이 이어지자 “이제부터는 삼촌(uncle)이라고 부르라”고 권했다.
스토트가 살았던 집 역시 그의 소탈한 면모를 잘 드러낸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스토트는 런던 옥스퍼드 서커스역 인근 아담한 3층 건물을 사택 겸 집무실로 사용했다. 1층은 비서 사무실, 3층은 서재였는데 2층 침실은 오전엔 교회 사역자가 사무실로 쓰고, 오후에만 그가 쓸 정도로 검소하게 지냈다. 침대나 책상, 의자 등 웬만한 가구는 모두 낡아 색이 바랜 게 대부분이었다.
온유한 성격의 스토트였지만 복음에 대해선 결코 타협이 없었다. 어느 날 저자가 “당신처럼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스토트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나같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돼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회의나 사무 등으로 바쁜 삶을 지양할 것도 당부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불화에 시달리는 데다 회의도 많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청중에게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세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기도와 말씀에 전념해야 합니다.”
스토트가 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시리즈’(IVP)와 ‘신약의 메시지’(아바서원)는 그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책들이다. ‘복음’ ‘제자’ ‘성경’ ‘교회’ ‘세상’ 5가지 주제로 분권된 시리즈는 모두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가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스토트는 책에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성경 속 하나님 음성과 주위 사람의 음성을 동시에 듣는 ‘이중 귀 기울임’을 실천할 것”을 당부한다. 이렇게 살아야 “참되고도 새로운 좋은 소식을 전파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세상에 적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54년 스토트가 펴낸 ‘신약의 메시지’는 그가 가장 먼저 쓴 저작물이다. 복음서 저자의 특성으로 바라본 신약성경의 특징을 다뤘다. 복음서 저자는 성장배경과 경험, 개성이 제각기 달랐지만 동일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양한 상황 속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는 하나님 은혜”다.
스토트는 “신적 영감이란 독특한 과정이 각 저자의 개성을 절대 훼손치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감동받았다”고 서문에 적었다. 영미권에서 쇄를 거듭해 나온 명작으로 이번 개정판에서는 전면 컬러 삽화를 만나볼 수 있다. 스토트의 설명을 따라 성경을 더 깊이 읽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