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5개 시·도지사는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간담회를 열고 “현장과 괴리된 공시가격 결정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주택 공시가 결정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공개된 후 같은 단지 내에서도 공시가격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등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현행법에서는 아파트 공시가격 산정 권한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있다.
지자체장들의 이런 요구는 과연 실현 가능한 얘기일까. 전문가와 입법 자료 등을 종합해볼 때 아직은 아파트 공시가격 공시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공시가격 결정권을 지자체로 넘기자는 논의는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대 국회 시절인 2019년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이 공시가격 결정 권한을 지자체장으로 이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제안설명에서 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며 “해당 지역 특성을 잘 아는 지자체로 공시가격 조사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시가격 산정 권한을 지자체로 옮기자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미국과 네덜란드 등 외국 사례를 주로 든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중앙정부)가 아닌 주(州) 단위 법을 통해 부동산 과세표준을 정한다. 네덜란드에서도 지자체장이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부동산 가격을 공시한다.
하지만 당장 공시가격 산정권을 지자체로 넘기기에는 현실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 정 전 의원이 낸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9~10월 이뤄진 법안에 대한 의견조회 과정에서 서울시를 제외한 지자체들은 모두 공시가격 조사 권한의 지자체 이양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개정안은 20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지자체들의 가장 큰 반대 근거는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다. 시세가 비슷한 아파트인데 지역마다 공시가격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21일 “공시가격은 과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60가지 지표에 활용되는데 비슷한 가격대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지역마다 다르게 산정되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우려했다.
공시가격 산정 권한을 선출직인 지자체장에게 부여할 경우 지자체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실제 시세에 비례하는 공시가격 산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정부 관계자는 “집값이 치솟는데 공시가격이 제자리걸음이라면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조사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더라도 조사를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하는 건 똑같다. 오히려 지자체의 재정적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도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감정평가사 인건비 등을 포함해, 한 해에 공시가격 산정 업무에 들어가는 예산은 약 250억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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