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호화폐를 투자해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이른바 ‘코인 성공담’이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 회사 입사 몇 년 안 된 사원이 비트코인 대박 나서 퇴사 예정” “아는 형이 암호화폐에 투자해 수백억원을 벌고 퇴사” 등 실패담은 없고 성공담만 들려온다.
암호화폐거래소가 분석한 지난 1~2월 회원 130만명의 연령별 일평균 거래량에서 30대가 39%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암호화폐 광풍에 뛰어든 청년들의 마음 밑바닥엔 깊은 불안과 갈망, 상대적 박탈감이 숨어 있다. 월급을 모아서 집 한 채 사기 어렵고 손 놓고 있다가는 ‘벼락 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감, 암호화폐로 돈을 벌어 파이어족(조기 은퇴자)이 되려는 갈망, 부동산값 폭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교의식이 만들어낸 의욕 상실, 자신감 저하, 중압감과 고립감 등의 상처 자국을 돌봐야 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계급을 나누는 ‘수저계급론’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잘 나가는 옆집 금수저와 나를 비교하며 끝없는 절망의 바다로 침몰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오인숙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세상의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 쪼그라들거나 우쭐대거나 분노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우리가 누구인지 꼭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지저스 스푼’에서 말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가득 들어 있는 스푼은 비워버리신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좋게 비워서 새로운 용도로 쓰신다. 인생 전반부에 가득 채워진 스푼이라면 인생의 하프타임에 들어서면서 비우는 작업을 시작하신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죽인다. 실패하기도 전에 실패를 예감하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을 비워내는 시간으로 인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이에 합당한 사명을 주실 것이다.
구약 성서 창세기 37장에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을 살다 보면 ‘구덩이 속의 요셉’처럼 절망의 구덩이, 슬픔의 구덩이, 실패의 구덩이, 불안과 염려의 구덩이, 고통의 구덩이에 갇힐 때가 있다. 헤어날 수 없는 파국에 내몰려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39세 이하의 무연고 사망자는 97명에 이른다. 쓸쓸히 세상을 등진 청춘들의 책장엔 취업 관련 서적과 함께 ‘애쓰지 않고 편하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의 심리학 책들이 꽂혀 있다고 한다. 세상을 향해 내민 간절한 손이 느껴진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고 심리적 면역력이 강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증, 무기력을 동반한 심리적 고립 위험에 노출돼 심리적 돌봄이 필요하다.
구덩이는 세상과 차단된 곳,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요셉은 캄캄한 그곳에서 죽음과 같은 공포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결과적으로 죽음의 구덩이가 아니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2)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구덩이는 요셉의 꿈을 실현하는 발판이 됐다. 분명한 것은 구덩이는 인생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곳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는 바울의 외침은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거듭 알려준다.
고시원이나 원룸에 살지 않아도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고, 잊혔다고 생각된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여전히 그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 그분은 분명한 계획을 세워 놓고 계시고 그분의 시간표대로 아름답게 이루어 내신다. 우린 그것을 기억하면 된다. 구덩이나 감옥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다가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세대에 세대를 거쳐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신다. 그것이 복음의 약속이다. 그리고 우린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예수님 수저(지저스 스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