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증경 총회장 ‘힙합 전사’ 변신… 다음세대 위해 권위 내려놓다

입력 2021-04-23 16:11
정영택 예장통합 전 총회장이 지난달 경기도 성남의 키즈워십 스튜디오에서 힙합 전사 복장으로 포즈를 취했다. 키즈워십 제공

챙이 넓은 힙합 모자에 짙은 색 선글라스를 선택했다.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주먹을 굳게 쥐고 금방이라도 랩을 쏟아놓을 것 같다. 넥타이를 매고 근엄한 표정으로 “여러분, 인간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힙합 전사 복장으로 “너, 왜 사니”라고 묻는다. 주인공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99회기(2014년 9월~2015년 9월) 총회장을 지낸 정영택(73) 경주제일교회 은퇴목사다.

코로나19로 교회마다 다음세대를 교육하는 주일학교가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아니 다음세대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정 전 총회장은 이런 현실에서 70대 증경 총회장이란 근엄 이미지를 벗고 힙합 전사 복장으로라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전 총회장은 지난달부터 유튜브 채널 키즈워십을 통해 매주 1편씩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구수한 할아버지 이야기 버전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에서 만난 그는 “다음세대를 위해선 교회와 어른들이 얼마나 헌신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초기 프로필 사진을 그렇게 촬영한 것이고, 동영상에선 편안하게 소요리문답을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신앙 이야기가 콘셉트입니다. 아이들에게 ‘요리에 레시피가 필요하듯, 신앙에선 요리문답이 바로 레시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제가 30분 정도 카메라 앞에서 강의하면 키즈워십 편집팀이 30시간 정도 들여서 정성스럽게 편집을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처럼 재치있는 자막을 넣는 등 지루하지 않게 10분 분량으로 동영상을 제작합니다. 지난달 시작했는데 1년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배하는 어린이는 행복합니다’란 모토로 사역하는 키즈워십은 이기둥 목사가 이끌고 있습니다. 제 영상을 포함해 어린이 그림 성경, 사순절 묵상 등 다양한 동영상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해 전 세계 사역지에 대가 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영택 예장통합 전 총회장이 동영상 제작을 위해 분장하는 모습. 키즈워십 제공

-총회장 권위를 내려놓은 모습이 파격입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대해 말하려면 ‘너 룰을 아니’ 하고 아이들 어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점을 설명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영(0)이라고?’ 하며 질문부터 던집니다. 30년 전 극동방송에서 소요리문답을 에세이 형태로 매일 5분씩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신앙의 맥을 따라서’란 제목으로 이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세대에게 신앙의 뼈대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열망이 특히 강합니다. 경주제일교회 사역 시절인 2011년부터 5년여 동안에는 청소년 신앙 잡지 ‘Q’를 직접 창간해 어려움 속에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세대 신앙 회복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 듯합니다.

“저도 여러 일을 벌였지만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제가 총회장 때엔 예장통합 성도가 285만명으로 조사됐는데 최근엔 250만명으로 7년 만에 35만명이나 줄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일학교와 청년부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총회장 때 서울 강남지역 교회의 80%는 고등부가 없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초등학생 주일학교 없는 교회가 절반 이상입니다. 그래서 총회에 교회성장운동지원본부 등을 설치해 다음세대를 위해 노력하고 또 농촌교회와 도시교회, 작은교회와 큰교회의 동반성장을 돕는 일 등을 해왔지만 성과를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앞에서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 넘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는 200년도 아직 안 됩니다. 예장통합만 해도 80% 넘는 교회가 아직 100명 미만입니다. ‘한국교회 1200만 성도’와 같은 허풍과 가식을 이제 버리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다양한 세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음세대 관련 직함도 여럿입니다.

“교육목회실천협의회 대표를 30년 가까이 해왔습니다. 키즈워십도 협의회와 MOU를 맺고 진행하는 사역인데 말 그대로 자원봉사입니다. 제가 녹화하러 가면 어른이기에 스태프께 식사라도 대접하려 합니다. 오히려 후원금을 모아 키즈워십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생태운동 대표도 맡아 교회의 동반성장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를 배출한 13개 교단이 초교파로 모인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에서도 대표입니다. 제가 몸으로라도 뛰어서 여러 일을 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정영택 전 총회장. 강민석 선임기자

-권위를 내려놓는 일이 목회자에게 제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총회장 취임 인사 때 마르틴 루터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 교회개혁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일까. 이념일까, 천주교와 싸우는 것일까. 저는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부가 입었던 법복을 벗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법복을 벗어 던짐으로써, 다른 말로는 권위를 벗어버리면서부터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본체를 비우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거 벗었다고 권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해서 교회가 전통의 권위나 자리의 권위를 벗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겠습니까. 코로나19로 교회의 가정사역 연계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부모님이 믿는 기독교 가정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학교는 과거 비기독교가정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키즈워십같이 거부감 없이 접근하는 기독 콘텐츠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를 위한 헌신이 지속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