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낮추면 높이십니다

입력 2021-04-22 03:05

이솝 우화 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나무 위에 앉았습니다. 까마귀가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데 나무 아래에 앉아있던 여우 한 마리가 다가와 까마귀에게 말을 시킵니다. “세상에 너처럼 좋은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 번 불러 보렴.” 까마귀는 이 말에 우쭐한 마음으로 깍깍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참 소리를 지르고 나서 고기를 먹으려고 보니 고기가 없었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이미 여우가 까마귀 입에서 떨어진 고기를 물고 도망친 뒤였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내 목소리를 낼 때 행복과 사랑, 복은 다 떠나갑니다.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지게 돼 있습니다. 내가 잘한다고 과신할 때 퇴보하는 것입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내려올 때 매우 힘이 듭니다. 우리는 일생 겸손해야 큰 은혜를 받고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기하게도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중세 시기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모든 죄악은 교만의 자식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선언합니다.(잠 16:18)

교만은 자기 자신을 과장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은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합니다.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러브 이즈 낫 퍼프트 업(love is not puffed up)”으로 번역합니다. 이 말을 의역하면 ‘교만’이라는 단어가 부풀리고 뻥튀기하며 과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늘 스스로 과장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우리 자신을 향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치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내가’라는 1인칭 주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교만은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방자히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 행위로 간주됩니다.(시 18:27, 잠 29:23, 렘 50:31) 교만함이라는 독성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정한 겸손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강조합니다.(약 4:7)

각종 기계의 부품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위치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또 사고나 고장을 예방합니다. ‘위치 이탈’은 사람에게는 타락을 말합니다.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유혹합니다. 유혹과 시험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을 데리고 간 곳이 높은 산이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를 높이시는 일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은 바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최대한 몸을 낮추면 하나님이 그분의 방법으로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신현모 목사(전주 바울교회)

◇창립 39년 역사를 가진 전주 바울교회는 1만여명의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교회는 해외에 30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다음세대 자녀들을 ‘글로벌 리더 킹덤 드리머’로 키워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꿈을 품고 사역을 전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