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과 정인이 양모 장씨처럼 변호인 조력을 거부한 채 상황을 직접 주도하는 모습은 보통의 범죄자에겐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다. 전문가들은 범행 이후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는 태도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다만 경찰은 김태현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김태현이 경찰 조사와 지난 9일 포토라인 앞에서 밝힌 심경을 준비하면서 변호인 조력을 거부한 데 대해 상황을 지배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승 연구위원은 20일 “이미 스스로 길을 정했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그가 계획한 치밀한 범죄 수법과 맞닿아 있다”고 봤다. 또 “전날 (마스크를 벗는) 자신의 계획을 변호사에게 미리 말한 건 이 사실을 취재진에게 알려주길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현은 서울북부지검에 송치되기 직전 취재진 앞에서 “뻔뻔하게 숨을 쉬고 있어 죄책감이 든다.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사죄한다”라는 말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김태현이 마스크를 벗은 뒤 보인 행동에서도 우월함에 취해 있는 심리가 드러난다. 김태현은 취재진이 “마스크를 벗어줄 수 있냐”고 묻자 “네”라고 끄덕이며 수갑을 찬 손을 들어 마스크를 벗었다. 당시 김태현이 혀로 입술을 핥고 양옆을 살피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행동은 ‘내 예상대로 됐다’라는 우월감의 표현”이라며 “취재진이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구하기만 기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취재진이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응하는 척하면서 마스크를 벗었을 것이라는 거다.
경찰은 김태현이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봤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 4명을 투입해 진행한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를 밝히며 “김태현에게서 반사회성 등 일부 성향이 보이긴 하지만 사이코패스로 진단 내릴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얼굴 공개를 계획한 것 자체만으로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보인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된다는 고지를 경찰에게 사전에 받았을 것”이라며 “일반적으로는 안 벗으려고 하지만 김태현은 미리 계획할 정도로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도한 자신감 등의 태도를 종합해 볼 때 김태현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변호인 조력을 거부한 장씨도 김태현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 교수는 “장씨에게는 공감능력 결여, 죄책감 부족 등 많은 심리적 문제가 있다”며 “김태현보다 (진단 검사) 점수는 낮겠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에 근접하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자기 과신에 사로잡힌 건 제대로 된 사회적 소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 교수는 “김태현은 게임에 몰입하면서 정상적인 소통이 되지 않고 고립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며 “장씨 역시 사회생활 경험이 쌓이지 않고 단절돼 자기 과신이 생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태현과 장씨가 변호인 조력을 거부한 의도는 다를 수 있다. 승 연구위원은 “둘 다 직접 나선다는 점은 같지만 방향성은 다르다”며 “김태현은 중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당당함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장씨의 경우 변호사의 조언이나 대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도 “김태현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큰 반면 장씨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더 큰 것 같다”고 전했다.
박민지 전성필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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