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우리만 빼고 다 알고 있습니다

입력 2021-04-21 03:04

지난가을에도 ‘그들’은 단풍으로 갈아입을 때가 됐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옷을 갈아입은 걸 보고서야 사람들은 가을이 온 줄 알았고, 울긋불긋한 단풍 아래서 아이처럼 기뻐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인생의 한 장면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또 그들이 하나씩 장렬하게 땅에 떨어져 눕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서야 사람들은 겨울이 온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그들이 먼저 알았고, 우리는 뒤늦게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얼마 전 남산자락을 거닐다 보니 그들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다 알고 있었으며, 아는 대로 정확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코트로 몸을 감싸야 할 정도의 추위가 여전했고, 코로나19까지 몰아쳐 여전히 겨울이라 여겼습니다. 달력을 매달고 살면서도 봄을 느끼지 못한 것은 달력은 그저 숫자였고, 그 숫자가 우리를 여러모로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봄이 온 걸 알린 건 그들이었습니다. 먼저 “안녕하세요. 나 여기 있어요. 작년에 헤어지고 일 년 만이네요. 놀러 오세요”라고 손짓해 줘 봄이 온 줄 알았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혹시 추우면 어쩌나 하는, 아직 겨울에 붙어있는 마음으로 코트를 걸치고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들은 화사하게 웃으며 반겼고 우리는 그 맑은 웃음을 보며 봄을 느꼈습니다. 코트를 입고 온 걸 후회하며 벗어 손에 들었습니다. 연신 땀도 닦아냈죠. 그들은 우리 언 가슴을 봄바람으로 충만케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긴 동안거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켤 때임을, 꿈틀거리며 동토를 뚫고 나와 노랗게, 분홍색으로, 화사한 흰색으로 피어날 때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누군가 삼천리강산의 모든 개나리와 벚꽃, 진달래에 피어나라고 명령을 내린 게 틀림없습니다. 분명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분이 있었을 겁니다. 여전히 춥지만 곧 봄이 온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다는 사실을, 화사하게 펴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할 때라는 걸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는 대로 앞다퉈 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만 몰랐던 것 같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에게도 명령하셨건만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하거나 마음이 둔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할 때가 됐단 것도 몰라 나이 먹은 철부지처럼 삽니다. 효도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여전히 부모 등을 무겁게 합니다. 멈출 때가 됐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을 하지 않고 벼랑으로 향합니다. 엎드려 기도해야 할 때가 된 걸 몰라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버팁니다. 십자가를 끌어안고 울 때가 됐지만 ‘내가 어때서’라며 뻔뻔하게 행동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하시는데도 그것을 몰라 여전히 울고 앉아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화해할 때가 됐는데도 계속 칼을 갑니다. 주님의 평강에 모든 걸 맡길 나이가 됐는데도 늦은 밤까지 욕망의 전차를 몰고 어두운 세상을 달리며 불안해합니다. 어디 우리가 모르는 게 이것뿐이겠습니까. 만물은 하나님께서 내린 명령을 받아 때가 된 걸 알고, 아는 대로 행하건만 우리만 모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기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우리도 창조주의 명령을 받아 그들처럼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처럼 알았으면, 아는 대로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도 화사하게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창조주께 영광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