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다운 완화 조치로 인해 부다페스트의 많은 상점이 영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여유로워지고 집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공원에는 솜사탕을 파는 할아버지까지 생겨났다. 내가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동안 사지 못하고 있던 물건들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커다란 장바구니와 현금을 챙겨 쇼핑몰로 향했다. 입구에 비치된 소독제로 손을 소독하고 잡화점으로 들어가 생필품을 구경하는데 어쩐지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았다. 록다운 기간 몇몇 생필품이 없는 상태로 지내던 생활에 적응돼버린 것이다. 결국 빈손으로 잡화점을 나왔다. 그리고 곧 무언가에 홀린 듯 스포츠용품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예정에도 없던 스포츠용품을 구매했다. 살면서 한 번도 자의적으로 스포츠용품을 구매해본 적 없었기에 나 자신에게 굉장히 놀라고 말았다. 평소 운동도 싫어하고 운동에 대한 필요성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에 내가 스포츠용품을 구매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운동을 좋아하는 부다페스트 사람들에게 물든 것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원에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운동 후에는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어느 날부턴가 부럽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도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는 스포츠용품을 한가득 구매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부다페스트 사람들에게 하나씩 물들어가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매일 아침마다 기대된다. 어떤 모습이든 그것이 좋은 모습이라면 마구 물들어버리겠다고 다짐해본다. 다만 한 가지는 절대로 물들지 못할 것이다. 그건 바로 나의 식성. 아무리 부다페스트에 맛있는 음식이 많더라도 한식에 대한 나의 사랑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