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영화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팬데믹 확산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든 가운데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동시 개봉 또는 OTT 오리지널 콘텐츠 서비스가 영화업계의 난관을 타개할 유용한 선택지가 됐다.
코로나19로 극장 출입에 제약이 생기면서 OTT의 문을 두드린 영화는 지난해 안재홍·최우식·박정민이 주연한 ‘사냥의 시간’이 처음이다. 전 세계 190여개국에 공개돼 해외 진출에 용이하다는 점, 일정 정도의 수익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은 영화계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OTT 넷플릭스의 강점이었다.
영화계 관계자는 “OTT는 오리지널 작품이 필요하고 극장은 코로나19로 쑥대밭이 되면서 이해관계가 맞물려 손을 잡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사냥의 시간’이 물꼬를 트자 영화 ‘콜’ ‘차인표’ 등이 줄줄이 넷플릭스로 향했다. 송중기·김태리 주연의 ‘승리호’는 국내 영화 최초로 해외 스트리밍 상위권에 안착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신세계’ ‘VIP’ ‘마녀’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6번째 작품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개봉이 5개월 미뤄진 공유·박보검 주연의 영화 ‘서복’은 지난 15일 OTT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다. CJ ENM의 OTT 플랫폼 티빙이 극장과 동시에 영화를 공개한 건 처음이었다. 18일까지 ‘서복’의 극장 관람객 수는 21만233명을 기록했다. 티빙에서도 ‘서복’은 15일 이후 줄곧 영화 콘텐츠 1위를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복’을 기점으로 영화계 판도가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에 맞서는 국내 OTT의 영향력 확장 여부에 관심이 크다.
OTT가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제93회 아카데미 최종 후보에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된 작품은 넷플릭스 영화 ‘맹크’다. 기존 아카데미상 후보 기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극장에서 최소 7일간 개봉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OTT 영역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온라인 개봉작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릴 수 있게 됐다.
‘극장과 OTT의 상생이 가능한가’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영화계는 OTT 영역 확장을 경계한다. 영화계가 수익을 회복하려면 극장 개봉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OTT가 TV를 대체할 수는 있어도 극장의 대체재는 될 수 없다”며 “OTT에서 영화를 접하면 극장의 경험을 더 갈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장소가 아니라 데이트와 친목 모임 등을 위한 공간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OTT를 통해 영화를 즐기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업계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2월 국내에 55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넷플릭스는 ‘카터’(가제)와 ‘모럴센스’(가제) 등 두 편의 한국영화를 자체 제작 중이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처음 마주한 생태계여서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면서도 “향후 극장과 OTT 동시 개봉 사례나 OTT만의 오리지널 시리즈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극장과 OTT가 상생하는 대안이 나오거나 OTT용과 극장용 영화가 분리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화계 관계자는 “안방에서 체험하기 힘든 4DX 등 극장만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서 “OTT와 영역을 조정하고 구분한다면 충분히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