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전 세계 초과 저축 5.4조 달러… 경기 부축 가능할까

입력 2021-04-20 04:02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돼 전 세계 가계에 쌓인 초과 저축이 지난 1분기말 현재 5조4000억 달러(604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18일(현지시간)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소비 규모와 비교해 늘어난 이 같은 규모의 초과 저축액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는다고 밝혔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팬데믹이 종료돼 경제봉쇄가 풀릴 경우 억제된 소비가 분출될 것”이라면서 “초과 저축액 가운데 3분의 1만 써도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민간 경제연구소 콘퍼런스 보드 조사결과 1분기 소비자 신뢰지수도 200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에 달해 소비를 통한 경제 부축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산술적인 분석과 기대가 실질적인 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선순환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초과 저축의 상당 부분이 그동안 경제봉쇄가 심해 정부 지출이 많았던 미국 등 북미 지역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 1조9000억 달러의 부양 패키지를 포함해 3차례 부양책이 집행된 미국만 해도 초과 저축액이 GDP의 12%인 2조 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2000~2019년 평균 6%였던 미국 가계의 소득 대비 저축률은 지난해 1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저축률은 같은 기간 3%에서 15%로, 스페인은 4%에서 14%로 크게 늘었다. 3차례 재난지원금을 지원한 한국도 5%에서 11%대로 불어났지만 아시아 국가 전반의 저축률은 크게 늘지 않았다. 초기 코로나19 감염자가 크게 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가계 지출에 미친 영향도 적었기 때문이다. 남미와 동유럽 국가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타격이 심각하고 정부 지원 정책규모도 작아 저축률 상승폭이 작다. 선진국에 집중된 백신 보급률의 차이까지 맞물리면서 세계경제의 성장률 양극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 15개 선진국가들 중에도 중산·서민층보다는 부유층에 저축이 집중돼 있는 것도 소비 증가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상위 소득 40%가 초과 저축액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부유할수록 소비보다 자산을 늘리려는 성향이 강해 저축→소비 분출→생산 증가→투자 확대→고용 증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 회복 속도가 경제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가계의 소비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요 경제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4분기 대비 올 4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4%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4% 가량 개선을 보일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일자리는 2019년 말에 비해 1.6%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용 증가 속도가 낮은 이유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용주들의 망설임을 꼽았다. 백신 보급에도 불구하고 변종 바이러스 증가 등으로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몰라 수요가 완연히 회복되기를 지켜보려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원격근무가 고용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큰 데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에 의존해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도 당분간 코로나 이전 수준의 고용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