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입력 2021-04-20 04:06

우리는 자주 역사를 바로 읽지 못한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오류 가운데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평가다. 박 전 대통령이 비명에 서거한 지 벌써 42년째이지만 그의 신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자격이 부족해 보이는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보면 박정희의 신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나라 국민으로서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의 경제적 치적까지 통째로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이 그의 시대에 마련됐음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생산 설비와 시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였다. 그러나 외국으로부터 기계 설비를 도입하기 위한 외환은 태부족이었다. 투자를 위한 외화 기근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대일청구권자금으로 미화 5억 달러가 도입되고 베트남 파병에 따른 부수적 경제 효과가 나타나면서였다. 지금 보면 가소로운 액수지만 당시 우리의 상품 수출은 약 1억6000만 달러였고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14억 달러 정도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협상과 베트남 파병의 잘못된 부분은 당시나 지금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난에 찌든 나라를 부흥시켜야만 하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야만 하지 않을까. 미래에 역사의 평가가 어찌됐든 경제 발전에 필요한 외환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박정희는 우리 경제 발전의 결정적인 순간에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필수적인 리더십을 행사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은 물적 투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물적 투자의 수익성은 기계 설비를 운용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 당시 잘 교육받았을 뿐만 아니라 풍부했던 노동력은 자본의 높은 효율성과 수익을 보장했다. 우수한 노동력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해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우리 경제 발전의 8할 이상은 노동 때문이라고 본다. 그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음은 분명하나 이 나라의 기적이 박정희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를 잘못 읽은 것이다. 딸까지 대통령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제 다시 전직의 신화로부터 탄생한 정권이 저물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다. 잘못된 역사 읽기와 지나친 신화가 박근혜의 비극으로 귀결됐듯이 노무현의 신화로 탄생한 정권이 다시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문재인정권과 박근혜정권, 추구하는 내용만 다를 뿐 하는 행위는 판박이라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감동이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많은 국민들은 환호하며 박수쳤다. 그러나 취임 4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평등, 공정, 정의란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진영만을 감싸는 감정적인 접근까지 박근혜와 빼닮았다. 그 사이 안보, 경제, 사법, 정치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다.

독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소극(笑劇)으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비극인가? 아니면 소극인가?

조장옥(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