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H 투기세력, 광명 땅 사기 전 전주서 ‘한탕’

입력 2021-04-15 00:03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한 혐의로 구속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3급 직원 정모씨(부장대우)와 연관된 전주의 투기 의심 세력이 광명 노온사동에 땅을 사기 전 전주 효천지구에서 토지 거래로 수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관보와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전주 효천지구의 과거 땅 소유주를 조사한 결과 노온사동 원정 투기 의심 세력 42명 가운데 10명이 동일인인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10명 가운데는 정 부장의 지인으로 지난 12일 함께 구속된 법무사 이모씨와 그의 아내도 포함됐다. 다른 8명은 전북 지역 개원의 2명과 배우자, 고용노동부 공무원 등인데 대부분 정 부장 및 다른 LH 직원과 연결고리가 있었다.

효천지구는 과거엔 임야와 논밭이었지만 지금은 전주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으로 꼽힌다. LH가 2012~2019년 도시개발사업 방식으로 조성했는데 정 부장이 사업 담당자였다. 투기 의심 세력은 정 부장이 건넨 정보를 이용해 이곳에서 돈을 번 뒤 광명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수익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가 LH의 과거 사업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취재팀 분석 결과 구속된 법무사 이씨는 효천지구에서 수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2014년 3월 완산구 효자동2가의 논 69㎡(약 20평)를 4570만원에 매입했다. 4년 뒤인 2018년 이 땅을 유한회사 상연개발에 1억5810만원을 받고 팔았다. 소규모 땅으로 1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이씨의 아내도 다른 5명과 효자동2가의 땅 1290㎡(3필지)를 2014년 4억8750만원에 산 다음 2018년 16억7420만원에 되팔아 무려 12억원에 가까운 차익을 봤다.

이들이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건 효천지구에서 LH 주도로 ‘환지 개발’이 이뤄지고 있어서였다. 환지는 공공이 토지를 수용할 때 현금으로 보상하지 않고 토지 소유권을 그대로 돌려준다. 개발하기 쉽도록 정비해 돌려주므로 대부분 땅의 가치가 높아진다. 개발이 완료된 뒤 이곳 주변에선 “미리 알았다면 땅을 사지 않을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씨는 이후 2017년 가족과 친인척 등을 동원해 30억5000여만원을 주고 광명 노온사동 땅 2만736㎡를 사들였다. 경찰은 이씨가 정 부장에게서 개발 정보와 자금 등을 받아 해당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 부장 및 이씨와 지인인 의사 A씨 부부도 효천지구와 노온사동 땅을 잇따라 매매했다. A씨 부부는 2011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효천지구의 6개 필지와 건물 1개를 매입한 후 되팔거나 LH에 넘겼다. 등기부등본상 차익은 8억4000만원 이상이다. A씨 부부는 이어 2017년 4월 이후 세 차례 노온사동의 땅을 매입했다. A씨와 함께 땅을 산 의사 B씨 부부와 C씨 부부도 2014년 효천지구에서 부동산 매매로 수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이들은 3~4년 뒤 노온사동 땅을 매입했다.

고용노동부 공무원인 D씨도 효천지구와 노온사동 토지 소유주 명단에 모두 등장한다. D씨는 2010년 8월 효자동2가의 밭 1633㎡를 2억8600만원에 샀다가 2015년 3월 3억5000만원에 유한회사 효천산업에 팔았다. 이어 2019년 10월 남편과 함께 노온사동의 밭 1138㎡를 4억600만원에 매입했다.

광명 노온사동과 전주 효천지구에서 땅을 산 사람들은 대부분 구속된 정 부장으로 연결된다. 의사 A씨는 지난 13일 취재팀과 만나 노온사동에 땅을 사게 된 계기에 대해 “정 부장의 추천을 받아 매입했다. 아내끼리 가깝게 지내 알게 된 지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부장이) 은행 이자보다 나을 테니 장기 투자용으로 사라고 했다”며 “인터넷에 다 알려져 있는 정보였고 이후 직접 찾아보니 유망한 것 같아 조금씩 샀다”고 말했다.

법무사 이씨는 경찰 수사에서 정 부장의 지인임이 확인됐다. 이씨는 또 의사 A씨, 의사 B씨와 전주의 한 고교 동문이다. 이씨 부부와 A씨 부부는 함께 효천지구 땅을 샀다가 판 이력이 있다. 여기에 A씨는 C씨 부부와 땅을 공유하고 넘긴 적도 있어 이들끼리도 지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노온사동, 효천지구 두 곳에서 땅을 산 사람 가운데는 현직 LH 직원의 7촌 당숙의 아내 E씨도 발견됐다(국민일보 3월 24일자 1면 <아내·형수·7촌 동원 ‘차명’ 원정 투기 의혹> 참조). E씨는 완산구 삼천동2가에서 2011년 4억5400여만원에 땅 2필지를 샀다. 이어 2017년 노온사동에 가족, 친인척 등과 함께 거래금액 10억6500만원에 땅을 샀다.

정 부장은 환지 방식으로 개발된 효천지구 사업에서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했다고 한다. 효천지구 개발 계획은 2005년 처음 수립됐지만 보상을 둘러싸고 LH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전주시 의회 관계자는 “계속 지연되던 효천지구 사업이 2011년 환지 방식으로 바뀌면서 빠르게 추진됐다”며 “담당자였던 정 부장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전주 완산구 삼천동과 효자동 일대(67만3000㎡)에 조성된 효천지구는 토지 매각, 아파트 분양 등에서 전북 일대 신고가 기록을 속속 갈아치웠다. 2015년 LH는 효천지구 내 민간 아파트용 공동주택용지 3곳에 대해 경쟁입찰을 했는데, 공급예정가격보다 1.4배 비싼 가격에 낙찰되며 전북 지역 최고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매각 대금은 토지 소유자들에게 돌아갔다.

비싸게 팔린 땅 위에 지어진 아파트 분양가는 고가 논란도 일었다. 전주시 의회 소속 의원이 높은 분양가를 성토하는 피켓 시위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20.2대 1의 청약 경쟁률로 모든 가구(821세대)가 1순위 마감됐다. 전주시 의회 관계자는 “당시 효천지구가 (전주) 서쪽의 마지막 공동주택 사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지금도 효천지구 아파트가 전주에서 가장 비싼 만큼 땅값도 가장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