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의료기기 정보 몰라…건강권 위해 시행 못미뤄”

입력 2021-04-18 18:05
‘의료기기의 안전한 사용 유통관리 시스템 긴급 점검’ 정책토론회 패널. 정재호 과장, 서인석 이사, 배성윤 교수, 전영철 고문, 이환범 변호사, 김준현 소장(왼쪽부터). 사진= 박효상 쿠키뉴스 기자

참석자
전영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고문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이환범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배성윤 인제대학교 교수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장
정재호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

환자 안전과 유통 과정 투명화를 위해 도입된 ‘의료기기 표준코드(UDI)’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제조·유통·사용 환경을 반영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된 ‘의료기기의 안전한 사용­유통관리 시스템 긴급점검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전영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TF 고문은 UDI제도가 의료기기 유통 구조의 현실과 관행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 고문은 “정형외과 수술기기 세트와 같은 사용 전 멸균 이식용 의료기기는 응급으로 사용되는 특성 때문에 공급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크기별로 다양한 이식형 의료기기를 한꺼번에 병원에 제공하면 환자 상황에 따라 맞는 사이즈를 선택해 사용하고, 쓰지 않은 것은 다시 반납하는 시스템”이라며 “결국 최초의 멸균 포장이 제거되는 상태인데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바코드를 새로 부착하고 공급내역을 보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구매자(간납)의 우월적 지위 행사 관행도 언급하며 “구매자 측에서 식약처 허가사항과 맞지 않는 소분판매를 요구하고 있고 공급내역보고 의무를 떠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예방·철폐할 수 있는 법적,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병원계도 다양한 의료적 특수상황을 고려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패널토론자로 나선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환자마다 신체, 체질이 다르고 수술 및 시술에 들어갔을 때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예측하지 못하는 예외적 상황이 있을 수 있어 이를 감안해 구매를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공간, 물적, 인적 자원이 필요한데 건강보험에서는 실제 쓰이는 재료에만 비용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점이 UDI제도와 맞물렸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병원 및 업체 등의 보고 의무가 너무 과중하다. 3, 4등급 의료기기는 인체삽입형 등으로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상세한 관리가 필요한데 2등급 의료기기를 3, 4등급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를 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법조계는 의료기기 제품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법률 개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환범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의료기기의 품목은 매우 다양하고, 제품이 소비되는 병·의원 상황도 모두 다르다”며 “개별 제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강력한 규제와 UDI가 적용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다만, 소분판매 등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구매자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행법상 의료기기의 소분판매는 불법이다. 법률 위반 행위가 자행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제조·판매업자의 소분판매 관행에는 구매자의 요청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구매자가 소분판매를 요청하는 행위도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환자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소장은 “환자들은 병원에서 각종 의료기기에 노출되지만, 의료기기에 대한 정보접근성은 의약품에 비해 굉장히 취약하다. UDI를 근간으로 하는 전주기 유통관리에서 환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정부, 구매자, 판매자뿐만 아니라 환자도 참여해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의견을 같이했다. 최 의원은 “과거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당시 어떤 의료기기로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당사자인 환자들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기기를 유통 관리하는 시스템의 체계화가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제도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업계와 지속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재호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관리과장은 “의료기기 안전사용과 합리적 관리를 구현하고자 법령 제정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을 개선할 것”이라며 “업계 입장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어떤 안전사례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히 의사소통하며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정 과장은 “일각에서 표시기재에 대한 유예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3년이라는 기간이 법에 정해졌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공급내역 보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분들은 처분을 유예하고 있다”면서도 “UDI는 의료기기 등급에 관계없이 모든 기기에 붙이는 것이다. 1, 2등급만 제외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다만 “3, 4등급은 위험도나 높아서 상세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추적 관리가 필요한 기기는 별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인체삽입 의료기기 중 일부는 의료기관이 어떤 환자에게 사용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 체계가 마련돼 있다”고 부연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