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예방접종증명서인 이른바 ‘백신 여권’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가 하면, 백신 여권 사업의 진행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병관리청은 자체 개발한 전자예방접종증명서 애플리케이션(앱)을 지난 15일 공개했다. 블록체인과 분산신원인증(DID)기술을 적용해 위·변조를 방지하고 QR코드 간편인증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자예방접종증명서는 해외 출입국하거나 공공장소를 드나들 때 코로나19 백신접종 여부를 증명하고자 사용하는 것으로 흔히 ‘백신 여권’으로 불린다. 질병청은 해당 앱을 활용해 예방접종 완료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차원의 ‘백신 여권’ 도입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백신 여권 도입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이목을 끌었다. 청원자는 “정부가 국민들 모르게 (백신 여권의) 윤리적·기술적 기준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도입 여부와 시기, 방법까지 다 결정한 다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는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백신 접종을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백신 접종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QR코드로 백신 여권이 도입될 경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등 계층 간 격차 및 계층 소외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국민청원에는 16일 오전 기준 9125명이 동참했다.
보건의료시민단체 등에서도 ‘백신 여권’이 자칫 차별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백신 여권은 일종의 백신을 맞았다는 표식인데, 백신을 접종할 수 없거나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면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 차별을 둔다는 것 자체가 보편적인 인권 원칙에서 어긋난다. 백신 여권이 단순 접종 독려를 넘어 식당, 공공시설에서의 인증 등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든다면 인권의 관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며 “방역관점의 접근에 앞서 인권적 원칙과 기준을 살펴야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질병청의 백신 여권 사업이 공개입찰이 아닌 벤처기업 ‘블록체인랩스’의 기술 기부를 받아 진행된 것이 알려지면서 공정성 문제도 불거졌다. 특히 질병청은 코로나19 백신의 예방접종여부조회 및 증명서 발급을 중단하고,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서만 접종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 내 개인 인증을 통해 접종내역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백신접종인증서비스를 준비하던 민간 기업들에는 제동이 걸렸다.
질병청은 현재 코로나19 백신 접종 데이터를 민간 기업에 제공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코로나19 접종 인증 서비스를 시행하려면 질병청의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데, 민감 정보이기 때문에 제공이 어렵다”며 “다만 전자 예방접종증명서에 대한 민간기업의 자체 서비스가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정보보호의 기술적 조치를 전제로 한 경우라면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