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편집자라면 피할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원고 투고자들과 작품에 대한 이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세상일은 결코 나 좋은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상대방이 좋다고 말(주장)하는 원고를 내 쪽에서 반려하기 위해서는 어째서 이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지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려 메일에는 대부분 답이 없지만 이따금 격앙된 상태의 회신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메일에는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질문이 포함돼 있다. 당신이 말하는 ‘문학성’이란 게 도대체 뭐요.
문학적인 것과 문학적이지 않은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내게도 뾰족한 답이 있는 건 아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개별 작품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근거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많은 작품이 문학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균열 내며 등장하는 모습을 봐 왔다. 그렇다 해도 문학적인 것, 혹은 문학성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 기준이 없을 리 없다. 파격은 기준이 전제돼 있을 때 가능한 전복이라는 사실 역시 숱하게 봐 온 탓이다. 요컨대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문학성’의 개념은 앞으로도 계속 난제일 가능성이 크지만,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문학성의 지표를 한 가지만 꼽자면 그건 바로 인간의 품위다. 지난주 서효인 시인이 말한 그 인간의 일 말이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인간의 그림자를 보여 주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문학성 있는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니클의 소년들’을 읽는 동안 강렬하게 붙들린 단어는 ‘급류’다. 급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화원에 입소하게 된 소년 엘우드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첫날밤을 보내는 동안 떠올린 단어다. 아침까지만 해도 “원래 살던 세상에 있었”던 그는 부지불식간 낯선 곳에 누워 불안에 떠는 신세로 전락한다.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경찰에 체포된 이후 그는 계속 눈물을 흘린다. 어쩌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형편없는 길로 빠져버렸는지 알 수 없어 눈물을 흘리고 이런 자신을 보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할머니가 가여워 눈물을 흘린다. 누구나 다 급류를 만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쉽게, 더 무방비 상태로, 더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급류에 휩쓸린다. 차별과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죄의식 없이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차별받는 인간과 평등이라는 가치에 관심 없는 차별하는 인간의 대립.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건 양극단에 속한 인간들이지만 이들의 대립을 지속시키는 건 그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모른 척하는 인간 말이다. 모른 척하는 인간의 수에 변화가 없으면 극단의 간극에도 변화가 없다. 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다양한 방식으로 ‘모른 척’하는 인간들을 탐색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모른 척으로 점철돼 있다. 모른 척은 어딘가 숨어 있다가 미래의 한순간에 부메랑이 돼 우리 삶을 공격해 온다.
빠듯한 살림에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것이 분명한 딸의 삶을 뻔히 다 알고 있지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엄마는 딸의 고통을 모른 척한다. 남편의 실종 이후 술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 딸 역시 엄마의 상황을 모른 척한다. 아는 순간 고통을 나눠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설사 그것이 가족의 형태라 해도 그 가까움이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남편이 불미스러운 일로 일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는 사실,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한 대가는 이후 아내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 모른 척의 비극은 영원히 모를 수 없다는 것이다. 대가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넘어선다.
인간은 타인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인간은 타인에게 속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마저 속는다. 자기기만은 가해자도 자신이고 피해자도 자신이며 목격자도 자신인 완전범죄다.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이 범죄는, 다만 문학의 법정만 문제 삼을 수 있는 인간의 그림자다. 두 편의 소설을 이어 읽는 동안 내가 강렬하게 붙들린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니클’은 뭘까. 언젠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공격할 그것.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