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취임 직후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일상 복귀 지원’을 언급했다. 피해자 측 역시 “‘업무 복귀’가 ‘일상 복귀’의 첫걸음”이라고 밝히며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평범한 하루를 되찾기 위해선 지원 약속이 일회성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최근 진행된 오 시장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직장에 복귀해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 후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용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시장이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일상’은 어떤 의미일까. 박 전 시장 피해자 변호인단의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말하는 ‘일상’이라는 건 원래 성폭력 사건 이전에 누리던 평범한 하루”라고 정의했다. 서 변호사는 “사건 자체가 완전히 없던 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일터로 돌아가는 것은 일상 회복의 시작이다. 그래야 다른 곳으로도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일터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피해 회복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전문가들은 일상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2차 가해를 막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복귀했을 때 조직 내외부에서 박 전 시장 지지자들에 의한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도 “조직의 배신자라는 낙인 등 2차 피해는 주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나타난다”며 “다른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도 일반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오거돈 성폭력 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악성 댓글 고소 등으로 60여건의 형사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온라인상의 2차 가해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신임 오 시장과 박 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두 시장 모두 피해자의 2차 피해 등 고충에 대해 충분히 공감했다고 한다.
오 시장은 “업무 복귀뿐 아니라 서울시 차원에서 여러 지원 기반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도 최근 부산시청 간부 간담회에서 “복귀 이후에도 피해자가 일상에 불편을 겪지 않고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주변 여건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배려와 지원을 당부했다고 한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신임 시장들의 이러한 약속이 자칫 선거 과정의 정치적 공약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진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학자인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일상 회복이란 피해자가 더 이상 숨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삶과 커리어와 정신적 건강을 회복해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면서 “조직 내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움과 이해,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판 이형민 전성필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