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근 실수요자 부동산 대출 완화 방침들이 쏟아지면서 주무 부처인 금융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당초 당국은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올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데 방점을 뒀지만,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여당에서 청년 및 무주택자들에 대한 대폭적인 대출 규제 완화 발언이 잇따르자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다음 주 중 발표할 계획이다. 원래 지난달에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태가 터지며 발표 시점이 재보선 이후로 연기됐다.
금융위의 가계대출 관리 목표는 쉽게 말하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쓰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13일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 강화책과 실수요자 지원 등의 완화 방침을 잘 조합해 가계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게 이번 대출 규제의 핵심”이라면서 “최근에는 실수요자 지원 부분만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내년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의 목표치는 4%대다. 지난해 증가율(7.9%)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금융사별로 적용되던 DSR 40%를 차주별로 확대 적용하고, 고액 신용대출에 대해선 원금 분할 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대출 증가 속도를 크게 떨어뜨리겠다는 정부의 규제 방침은 재보선 이후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현 정권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드러나자 여당 내에서 무주택자,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결국 실소유자에 한해 LTV·총부채상환비율(DTI) 우대 한도를 현행 10% 포인트에서 더 올리거나, 청년층에게 미래 소득을 반영해 DSR을 산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주문은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이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무주택자의 경우 집값의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식의 발언이 한 예다.
금융 당국에선 이처럼 과도하게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부동산 시장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를 너무 풀면 안정세로 접어들던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며 “주택 공급 신호가 주춤한 상황에서 가수요가 더해지면 시장 불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현 가계대출 규모만 봤을 때 리스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6357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4652억원 늘었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차주와 담보물건, 담보주택의 지역 및 가격대, 차입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