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대만의 밀월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첫발을 뗀 미국과 대만의 관계 개선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를 이유로 미국과 대만 사이에 놓여 있던 각종 외교적 금기들도 하나둘씩 사라지는 추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간주하고 대만을 대중(對中) 압박을 위한 파트너로 격상한 바 있다. 후임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전략을 사실상 계승하면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역시 미·중 경쟁 구도를 활용해 외교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
‘미·중 불문율’ 깬 트럼프
미국·대만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파격적으로 진전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6년 12월 이례적으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한 것은 79년 미·중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37년간 지켜졌던 불문율이 깨지자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대만이 ‘장난질’을 일으켰다고 해서 ‘하나의 중국’ 인식을 뒤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마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집고 싶다면 우선 그 후과가 무엇일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중국에 보란 듯 대만과의 밀착을 과시했다. 과거 행정부가 40년 가까이 지켜온 미·중 관계의 불문율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차이 총통은 2018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 시설을 방문했다. 대만 총통이 미 연방정부 시설을 방문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앨릭스 에이자 당시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미·대만 단교 이후 대만을 찾은 최고위 미국 관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은 한 달 뒤인 그해 9월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 추모식에 키스 크라크 당시 국무부 차관을 파견했다. 한 달 사이에 미국 각료급 인사가 연달아 대만을 찾자 중국은 대만해협에 군용기를 파견해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대만 관리의 공식 회동을 막았던 국무부의 ‘대만 접촉 가이드라인’도 점차 완화됐다. 가이드라인은 대만 관리의 국무부, 백악관 방문을 규제했었다. 하지만 2018년 7월 가오숴타이 당시 주미 대만대표가 국무부를 찾은 데 이어 지난해 2월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이 당선인 신분으로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더 나아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종료 11일 전인 지난 1월 9일 대만 접촉과 관련한 모든 제한사항을 폐지한다는 초강수를 내놨다. 대만군 인사가 군복 차림으로 미국 관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양측 접촉 시 대만 국기를 걸지 못하도록 했었던 각종 사소한 금기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첫날부터 ‘대만 중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립 일변도로만 치달았던 미·중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한때 나왔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분야 인사들이 대중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미·중 관계가 ‘리셋’될 것이라는 기대는 쑥 들어간 상태다.
특히 미국 단독으로 대중 공세를 펼쳤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의 공조를 중시하는 기조다. 때문에 대중 압박 카드로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링컨 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대만의 국제적 역할이 더욱 커지길 바란다는 취지의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만 중시는 출범 첫날부터 드러났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 대표를 초대한 것이다. 주미 대사 격인 대만 대표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단교 이후 42년 만에 처음이었다. 샤오 대표는 지난해 개인 트위터 계정에 본인을 ‘대만 대사(Taiwan Ambassador)’로 기재해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 접촉 가이드라인도 개정했다. 기존 가이드라인이 미국과 대만 관리의 접촉을 제한하는 게 골자였다면, 새 가이드라인은 양측 간 교류를 장려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연방정부 건물은 물론 주미 대만대표부 청사에서도 양측 관리 간 실무협의가 열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국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만과 관련한 모든 제한을 폐지하겠다는 폼페이오 전 장관의 선언이 새 가이드라인에 반영됐는지 여부도 분명치 않다.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대만 접촉 관련 규제 일부를 복원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