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 기대 높아진 야 잠룡들… 여권 ‘이재명 쏠림’ 커질 듯

입력 2021-04-09 04:03

4·7 재보궐선거가 여권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차기 대권 구도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은 향후 야권 통합 플랫폼을 내걸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야권 주자들을 끌어들일 동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내 잠룡들 역시 입지를 새롭게 굳힐 기회를 잡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번 선거 참패 책임에서 한발 비켜나 여권 대선 레이스에서 독주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 패배의 영향을 일부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주자들은 정권 재창출 행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지난해 4·15 총선에서 전례없는 압승을 이끌며 대권 날개를 달았던 이 전 대표는 불과 1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우선 재보선 후보 공천을 결단했던 이 위원장은 대권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 위원장은 8일 입장문을 내고 “4·7 재보선으로 표현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며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과 민주당의 미래를 차분히 생각하며 낮은 곳에서 국민을 뵙겠다”며 사실상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다.

당 안팎에선 이 위원장이 사실상 한동안 대선 레이스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위원장 측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외부 악재가 잇따르며 이 위원장도 유탄을 맞았다. 책임 공방보다 수습에 진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의원은 “1년 남짓한 대선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데, 이 위원장의 리더십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윤 전 총장의 행보다. 윤 전 총장은 총장직 사퇴 이후 기성 정당과는 거리를 둔 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윤 전 총장은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을 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서울·부산시장에서 압승을 거두며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윤 전 총장이 당분간 제3지대에서 문재인정부 비판 메시지를 꾸준히 내고, 강연 활동 등을 통해 몸집을 더 키운 뒤 국민의힘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도 여전하다. 총장직을 사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기성 정치권과 손을 잡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측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재보선 승리로 범야권 대권 주자로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비록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적극적인 지원 유세로 선거 승리에 힘을 보탰다. 향후 국민의힘과 합당을 포함한 ‘야권 대통합’ 논의가 진행될 때 안 대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정권 심판론’을 기치로 외연 확장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선거 승리를 진두지휘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킹메이커’로 활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입지를 다진 유승민 전 의원도 조기 전당대회 개최와 당의 집단 지도체제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복당을 통해 본격적인 대권 준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커지고 있다.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20~25% 지지율을 유지해 온 이 지사의 ‘1강 체제’가 견고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업체가 지난 4~7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24%를 기록했다. 윤 전 총장은 18%, 이 위원장은 10%에 그쳤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지사는 당과 ‘거리 좁히기’에 나서고 있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당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 측 핵심 관계자는 “당분간 도정에 충실하며 당이 가야 할 방향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이재명표 정책의 효능감을 국민에게 알리면 흔들린 민심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것이 당을 위한 최선의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쇄신 과정에서 불거질 여러 잡음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대선 레이스를 준비한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여권 주류인 친문재인(친문)계와 융합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지사 아니면 답이 없다’는 분위기가 당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 지사는 안 된다’는 기류도 여전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조만간 사퇴 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 여권 내 이 지사의 ‘1강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함께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는 7월을 기점으로 친문 주류가 결집해 새로운 주자를 띄우게 된다면 향후 정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현재로선 친문 진영의 ‘제3 후보론’은 불투명하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광재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도 거론되지만 당 쇄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3후보론이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제3 후보도 결국 지지율이 나와야 할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양민철 백상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