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4·7 재보궐선거 레이스가 여야의 혈전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2년 차기 대선의 전초전으로 급부상한 이번 재보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비위로 촉발된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후보 공천 결정과 여야 단일화,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부동산 민심이 폭발하면서 어느 재보선보다 높은 관심을 끌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생태탕’ 등 여야의 진흙탕 싸움이 극심해지며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당초 이번 재보선을 향한 정치권의 주목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21대 총선에서 1년도 되지 않아 열리는 데다 특별히 경합을 펼칠 만한 선거구도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정국은 순식간에 요동쳤다. 오 전 시장이 지난해 4월 성추행 혐의를 사실상 시인하며 전격 사퇴하고, 3개월 뒤 박 전 시장도 성추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상 초유의 ‘미니 대선’이 예고됐다.
첫 변곡점은 서울·부산시장 선거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의 공천 결정이었다.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내 여론을 수렴하고 정당으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명분을 내세웠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후보를 냈다는 비판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 같은 당헌·당규 개정을 결정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책임을 짊어지고 선거운동을 해야 했다. 이와 더불어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권 지지율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재보선 결과는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를 좌우하는 연립방정식이 됐다.
초반 선거 구도는 혼전 양상이었다. 여야는 일제히 단일화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야권 단일화 시 민주당 어느 후보와 견줘도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간 기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됐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도 조정훈 시대전환 후보에 이어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며 전면전에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여권을 당혹스럽게 한 악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2일 LH 임직원 땅 투기 사태를 폭로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계기로 성난 부동산 민심이 ‘정권 책임론’으로 급격하게 옮겨 붙었다. LH 사건이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중도층의 여권 지지율은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여기에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여권의 ‘피해호소인’ 등 2차 가해를 비판하면서 여성과 2030세대 표심마저 등을 돌리는 양상을 띠었다.
위기에 몰린 여권과 승기를 굳히려는 야권이 맞붙으면서 13일간 진행된 공식 선거운동은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졌다. 박 후보 측은 ‘내곡동 땅 셀프보상’ 의혹을 제기하며 오 후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고, 오 후보 측은 박 후보자 남편이 일본 도쿄에 아파트를 보유한 것을 놓고 ‘야스쿠니 뷰’ ‘토착 왜구’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두 사람은 세 차례 TV 토론에서도 거짓말 프레임과 문재인정부의 정책 실패를 주장하며 가시 돋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양측의 진흙탕 싸움은 오 후보의 내곡동 생태탕집 방문 의혹에서 ‘페라가모 구두’ 착용 논란 등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정책은 실종된 채 정쟁과 도덕성 공방에 매몰된 선거가 반복됐다는 비판만 남았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