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에 몸담은 MZ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사무직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생산직과 사무직의 성과급·복리후생 등 보상 역차별 문제가 불거진 게 표면적인 이유다. 생산직 중심의 기존 노조가 득세한 제조업계에 사무직이 사측과 소통할 수 있는 마땅한 창구가 없다는 점도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기는 또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월 생산직과 별도로 LG전자 사무직 노조가 설립됐다. 사무직 노조의 물꼬를 튼 이 노조는 약 3000명의 조합원을 확보했으며, 생산직과 별개의 임금단체협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IT업체는 물론 제조업 기반의 자동차 업계에서도 사무직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 2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증을 제출했고, 조만간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에선 8년차 이하 직원들로 임시집행부를 꾸린 ‘HMG 사무연구노조(가칭)’가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 노조 가입 대상, 운영 방식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된 지난해 임단협에서 상당수 제조업체들이 임금동결을 골자로 노사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생산직과 사무직의 보상과 복리후생 등 차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제조업은 생산직이 움직여야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사측이 생산 현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존 노조들은 구성원 비중이 큰 생산직이나 비정규직의 입장에 힘을 실어 왔다.
현대차그룹 소속 한 연구원은 “임금동결도 불만족스럽지만, 비상경영 과정에서 그룹사 생산직과 사무직의 복리후생 등에 차이를 둔 것에 대해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또 최근 사측이 처우 관련 개선을 약속했으나 구체적인 보상책이 즉각 제시되지 않은 것도 사무직 노조 설립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금호타이어 노사도 임금동결에 합의했으나 생산직에만 생산·품질 경쟁력 향상을 위한 격려금 지급을 결정한 게 사무직 노조 설립의 도화선이 됐다. 사무직들은 같이 일을 해도 회사로부터 인정받지 못 한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금호타이어는 직원 5000명 중 생산직이 3500여명, 사무직은 150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사무직은 일시적으로 불만족스러운 보상만을 이유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MZ세대인 저연차 사무직을 중심으로 사측과 마땅한 소통창구가 없어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무직 노조 설립에 동참 중인 입사 6년차 현대차 직원은 “오로지 임금이나 성과급 인상만을 위한 일회성 노조가 아니라 명확한 승진·보상 기준 등을 제시하고, 회사와 직원 모두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사무직 노조는 현재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 산하에 적을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년연장, 성과급 등 생존에 집중했던 기존 노조와 달리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 기준 마련, 중장기 동력을 만들 수 있는 복리후생 및 조직문화 개선 등에 지향점을 두고 있어서다. 파업을 앞세웠던 노조 관행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생산직 중심이었던 제조업계는 MZ세대의 가세로 본격적인 세대교체 시기를 맞이했다”며 “새로운 방식의 노조 설립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고, 노동계의 임단협 방식 또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나로 뭉쳐 같은 목소리를 냈던 기존 노조의 대규모 투쟁 방식과 달리 소수여도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