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받던 최빈국 한국, 年 25억 달러 베푸는 나라 됐다

입력 2021-04-10 04:05
한국 공적원조(ODA)의 일환으로 건립된 필리핀 카비테주의 한·필 친선병원에서 지난해 7월 코이카 필리핀사무소 직원들이 코로나19 대응 물품을 기증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코이카 제공

필리핀 수도 마닐라 남부 카비테주에 있는 한·필 친선병원은 카비테주의 유일한 코로나19 검사 및 치료 전담 병원이다. 우리 정부의 공적원조(ODA)의 일환으로 지난 2002년 100병상 규모로 세워진 이 병원은 2008년 3층 규모의 외래병동(소아과·내과·산부인과)이 추가 건립됐고, 2012년에는 기초의료서비스는 물론 감염병 연구 및 치료를 위한 대응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공중보건센터를 구축했다. 필리핀은 우리가 원조를 받다가 역으로 원조를 하게 된 대표적인 국가란 점에서 한국 ODA의 양적, 질적 성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제에서 해방된 1945년 ODA의 주요 대상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원조를 받은 지 54년 만인 1999년 피원조국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2009년에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는 등 최빈국에서 ODA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첫 번째 나라가 됐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ODA 지원액은 25억2100만달러(약 2조8450억원)로, DAC 29개 회원국 가운데 15위에 해당한다. 2010년 11억7400만달러에서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한국의 연평균 ODA 증가율은 11.9%로 DAC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DAC 전체 회원국의 연평균 ODA 증가율인 2.4%보다 5배 가까이 높다.

한국의 ODA 사업은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계획과 자금지원으로 협력대상국 연수생을 초청해 훈련하는 ‘협력대상국 연수생 위탁훈련’에서 시작했다. 산발적으로 진행하던 개발협력 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대외원조 전담기관이 필요해져 1991년 1월 공포된 ‘한국국제협력단법’을 근거로 그해 4월 1일 코이카(KOICA)가 설립됐다. 올해는 코이카 설립 30주년이다.

코이카를 중심으로 한 한국 ODA 사업은 초창기 전문가와 봉사단, 의료단 등을 파견하거나 개도국 공무원을 초청해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개발도상국의 공공행정 분야 역량을 강화하거나 교통, 전력 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청소년의 교육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게 사업이 다각화됐다.

코로나19를 맞아 역학조사관 육성, 거점병원 지원 등 방역 부문에서도 한국 ODA가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19 회복력 강화를 목적으로 코이카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ABC 프로그램’은 보건의료 취약국을 지원하고 개도국의 감염병 관리 역량을 강화하며 한국의 방역 경험을 활용토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116개국에서 644건의 사업이 1억5863만달러 규모로 진행됐다고 코이카는 설명했다.

코이카 지원으로 가나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현장역학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FETP)을 수료한 코로나19 역학조사관 조지 아콰아(오른쪽)씨가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코이카 제공

대표적인 성과가 역학조사관 양성이다. 감염병의 경로를 추적하고 추가 전파를 빠르게 막기 위해선 역학조사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감염병이 수시로 도는 아프리카 가나의 경우 가나대학교 보건대학원을 통해 중급 현장역학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해 이 프로그램을 졸업한 15명 중 14명이 추적조사, 데이터관리, 보건교육 등 코로나19 관련 대응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역학조사관 양성 프로그램을 마치고 졸업한 69명, 224명이 각각 활동 중이다.

코이카가 보건의료사업의 일환으로 네팔 필리핀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 10개국에 지원했던 15개 병원은 현지에서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코로나19 대응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을 벤치마킹한 방역본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우리나라도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 선언’에 참여함에 따라 한국 ODA 사업 또한 이와 궤를 맞추는 쪽으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코이카는 2025년까지 기후변화와 환경 관련 ODA가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의 2배로 늘리고 환경산업연구원, 녹색기술센터 등 국내 유관기관과 그린 ODA 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해 사업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녹색기후기금(GCF)과 협업해 피지 태양광 사업에 500만달러 재원을 유치하는 등 국제기구와의 협업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활용이 급증하면서 이른바 ‘비대면 ODA’도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와 몽골 등에선 이미 원격으로 교육봉사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손혁상 코이카 이사장은 9일 “디지털 접근성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는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온라인을 통한 개도국 대상 연수를 꾸준히 진행하고 디지털을 활용한 교육 봉사도 더욱 확대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교육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