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요청하니 콘텐츠 차감·정가 핑계·잠적… ‘오리발 본색’

입력 2021-04-07 04:04

지난해 동학개미운동으로 촉발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은 유사투자자문업계의 활황으로 이어졌다. 업체들은 대거 유입된 주린이들이 길을 잃고 시장 한복판에 서 있자 ‘잘 몰라도 할 수 있는 주식’ ‘다 알려주는 주식’ ‘수익이 보장된 주식’ 등을 표방하며 길잡이를 자처했다. ‘리딩(leading)’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유혹해 데리고 간 리딩방에선 불법이 난무했고 나가려는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 피해 건수는 지난 3년 새 17배 이상 증가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의 수치다. 소비자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 피해 건수는 2016년 768건, 2017년 1855건, 2018년 7625건, 2019년 1만3181건으로 늘었다. 피해 금액도 2016년 4억7830만원에서 2019년 106억3865만원으로 약 22배나 뛰었다. 리딩방에 들어갔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피해자들의 피해구제 접수건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구제 신청건수는 2017년 475건, 2018년 1621건, 2019년 3237건으로 급증했다.


2017~2019년 3년간 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한 5333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장 큰 피해 유형은 ‘계약 해지’ 과정으로 나타났다. 무려 95.9%(5115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환급 거부·지연’이 48.4%(2582건)로 가장 많았고 ‘위약금 과다 청구’ 47.5%(2533건), ‘부가서비스 불이행’ 2.0%(106건)가 뒤를 이었다. 거의 모든 리딩방 업체가 영업 과정에서 전액 환불을 약속하며 소비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막상 중도 해지를 요구하면 숨겨뒀던 이빨을 드러내는 게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리딩 업체의 환불 거절 수법은 교묘하다. 유형도 날마다 다양해지고 있다. 계약서 한쪽에 숨겨둔 덫을 드러내거나 가격이나 가입 기간에 대해 갑자기 말을 바꾼다. 아예 환불 상담을 미루다가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들은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리딩 실패에 따른 투자 손실뿐만 아니라 계약 해지와 환불 과정에서 더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①콘텐츠 제공을 빌미로 삼는 경우

A씨는 지난해 10월 19일 1년 회비 250만원을 현금 결제하고 리딩방에 가입했다. 밤새 마음이 바뀐 A씨가 다음 날 곧바로 해지를 요청하니 업체 측에서는 2일간 이용료를 차감하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주식 매매 교육자료가 담긴 200만원 상당의 VOD(동영상) 파일을 제공했다며 해당 가격을 뺀 48만6301원만 돌려줄 수 있다고 밝혀왔다.

②갑자기 서비스 정가를 제시한 경우

B씨는 10개월 리딩을 조건으로 300만원을 지불했다. 업체는 월 200만원짜리 VIP 서비스를 월 25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B씨는 한 달 만에 수백만원의 손실을 보고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체는 “회원님이 가입한 상품의 원가는 2400만원이다. 환불 시 정가 기준으로 한 달 이용료 200만원이 공제되며 환불 위약금 10%를 추가 제외한 소액만 돌려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③뒤늦게 유료·무료기간 안내한 경우

C씨는 1년 리딩을 330만원에 결제하고 VIP방에 가입했다. 두 달 사용 후 중도 해지를 요청했더니 업체는 C씨가 가입한 1년짜리 상품이 ‘유료 1개월+무료 11개월’ 패키지 상품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달 사용으로 유료서비스 제공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돌려줄 환불 금액이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1개월 리딩에 330만원을 쓴 셈이다.

④환불 문의 회피·잠적하는 경우

D씨는 400만원짜리 리딩방 가입 후 2주째 되는 날 “10%의 위약금과 일일 사용료를 낼 테니 계약 해지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체는 “안 된다. 다시 전화주겠다”는 말을 남긴 뒤 대화를 중단했다. 사흘간 D씨의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D씨의 거듭된 환불 요청에 업체는 “모든 수를 다 써봐도 소용없다. 우리는 승소한 전력이 있음을 참고하라”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⑤일방적으로 전자기기 전달한 경우

E씨는 200만원을 현금으로 결제한 뒤 1년짜리 리딩방에 들어갔다. 계약서 작성 다음 날 태블릿PC 하나가 집으로 배송됐다. 업체는 “원활한 주식 거래를 돕기 위해 신규 가입 회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딩방 지시를 따랐다가 큰 손해를 본 E씨는 열흘 후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체는 일방적으로 보낸 태블릿PC 가격 120만원과 일일 사용료를 공제한 값만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다양한 피해 상황을 알리고 대책을 찾으려 하나 그마저도 쉽지 않다. 포털사이트 블로그나 카페에 피해 호소글을 올리면 리딩방 업체 관계자들이 이를 스크린해 ‘게시중단’ 신고를 접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당 글은 사라지고 피해자에겐 “관련 당사자가 기타권리침해를 사유로 게시중단을 요청했으므로 2021년 4월 ○일자로 작성하신 게시물이 임시 삭제 조치된다”는 안내 메일이 온다. 포털에 업체명이나 주식 리딩방을 검색하면 그럴듯한 수익 인증글과 광고글만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우선 해당 업체가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여부를 파인(fine.fss.or.kr)에서 확인하고, 미등록 업체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불법임을 인지해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주린이 울리는 리딩방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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