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타보다 세리머니 잘하면 10만원씩 준다.”
남자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석진욱 감독은 4일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 준플레이오프(준PO) 2세트 작전타임 때 선수들에게 ‘깜짝 약속’을 했다. 상대 용병 케이타가 화끈한 득점 세리머니를 펼치며 분위기가 완전히 KB손해보험 쪽으로 넘어가자 이를 뒤집기 위해서다.
‘10만원 효과’는 적중했다. 선수들은 득점할 때 큰 액션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고, 3세트가 되자 코트의 기류는 바뀌기 시작했다. OK금융그룹은 결국 KB손해보험을 3대 1로 잡고 2015-2016시즌 우승 이후 5시즌 만에 플레이오프(PO)에 진출했다. 석 감독은 “최근 풀세트 경기에서 자주 패해 갑자기 생각한 아이디어”라며 “분위기가 살아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 큰 공약은 5일 오전 실현됐다. 석 감독은 육성군까지 포함한 선수 19명에게 자비로 10만원씩 쐈다. 선수들은 박수를 치며 공약의 엄수를 반겼다. 석 감독은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케이타만큼 세리머니 해준 선수는 사실 없었다”면서도 “다 같이 열심히 했으니 모두에게 돌렸다. 저보다 배짱이 큰 와이프가 흔쾌히 허락해 줬다”며 웃었다.
코트 밖에 석 감독이 있었다면, 코트 안엔 용병 펠리페가 있었다. 석 감독이 “처음에는 우승도 생각했지만 최근 많이 내려놨다”고 말했을 정도로 팀 분위기는 침체돼 있었다. 개막 후 6연승으로 화끈하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학교폭력 논란에 주전 레프트 송명근과 심경섭이 잔여 경기 출전을 포기하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우리카드가 한국전력을 잡아주면서 준PO행이 결정되기 전까진 봄배구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펠리페는 준PO 4세트 직전 선수들에게 ‘바이킹’의 역사를 큰 소리로 설파하며 투쟁심을 끌어올렸다. 그는 “바이킹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죽어서 돌아왔다”며 “우리도 모든 걸 쏟아붓자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야전사령관 펠리페(22점)의 진두지휘 속에 OK금융그룹은 최홍석(8점) 진상헌(7점) 조재성(6점) 등 여러 선수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승리할 수 있었다.
PO 상대는 강팀 우리카드다. OK금융그룹은 최근 우리카드에 내리 4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단기전은 기세 싸움이다. PO 첫 경기를 잡는다면 기회는 있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스태미너 좋아”란 한국말로 답한 펠리페는 “다음 게임이 중요해 기뻐할 시간이 없다. 잃을 게 없는 바이킹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의정부=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