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에서 직원이 전화로 누군가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부인이 더멋진세상 대표와 꼭 통화하고 싶어 바꿔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한다는 거였다. 전화기를 건네받으니 상대방은 대뜸 “아프리카에 우물 하나 짓는 데 얼마 드나요”하고 물었다. 나는 “깊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만 달러 정도 듭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오늘 입금하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우리 아들의 이름을 새겨 주실 수 있나요”란 말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분은 자폐증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그때 기니비사우 블롬 마을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덕분에 블롬 마을을 위해 우물을 파게 됐고, 이것이 마을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다. 지금은 블롬 마을에만 우물이 17개나 된다.
기니비사우에서 귀국하며 세네갈 수도 다카르를 거쳤다. 다카르는 서아프리카의 관문이자 국제 장거리 자동차 경주인 파리-다카르 랠리가 열리는 곳이다. 다카르에서 40㎞ 떨어진 곳에 분홍빛 호수 혹은 장미 호수로 불리는 ‘라크 로즈’가 있다. 건기에는 소금 함유량이 1ℓ당 300g 이상으로 중동의 사해와 비슷한 수준의 염도를 보이며 염분 때문에 분홍빛을 띤다. 라크 로즈로 가는 길 위에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본나바 마을과 우연히 처음 만났다.
본나바는 마을을 뜻하는 ‘본나’에 성씨 ‘바’가 합쳐진 것으로 바씨 마을이란 뜻이다. 이슬람교 전통이 강하고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돼 있어 선교의 열매를 맺기 어려운 곳이었다. 안내를 자처한 브라질 출신 파올로 선교사를 만나 “왜 사람들이 보이지 않냐”고 물으니 그가 마을 한가운데로 가서 공을 높이 차올렸다. 그러자 여기저기 개미굴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튀어나오더니 금세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자세히 보니 갈대와 나뭇가지를 엮은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집에서 염소를 기르거나 수㎞ 떨어진 곳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공이 없어서 선교사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갈댓잎으로 얼기설기 엮어 햇빛만 가리는 집이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다. 30~40명이 책걸상도 없이 바닥에 벽돌을 깔고 앉아 모랫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공부하고 있었다.
신종원 주세네갈 대사의 주선으로 세네갈 교육부 장관을 만나 본나바에 초등학교를 지을 테니 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관이 흔쾌히 수락하며 필요한 지원을 약속했다. 내친김에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낙후된 보건소를 리모델링하고, 말리리아약 등 필수 의약품을 제공했다. 현재 본나바 마을은 농업 개발을 위한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주변국에 훌륭한 발전 모델로 변모했다. 마을에 자생적으로 조그마한 교회도 생겨났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란 말씀이 실현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