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목적이 문제의 해결에 있다면 입법의 목적은 안전의 보장에 있습니다. 오래되고 익숙한 법치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은 일상에서 법의 존재를 느끼지 않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의 테두리는 평범하고 선한 많은 사람의 삶의 행동반경과 맞닿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법의 둘레가 줄어든다면 우리 모두의 삶에서 자유로운 사생활은 지나친 간섭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우리가 살면서 누리는 모든 자유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제한이 없는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는 더 이상 법치주의가 아닙니다. 타인에게 너무 충분한 자유를 주면 자신의 자유는 제한을 넘어서 침해를 받기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서 자유의 제한은 불가피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안전해집니다.
해마다 많은 수의 새로운 법이 제정됩니다. 개정법이 만들어지고 구법이 폐지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입법의 미비로 인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와 가치의 변화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의문을 제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나친 자유는 경계해야 하고 지나친 제한이 침해에 이르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의 일부 처벌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 것을 넘어 침해하기에 이르렀다고 보아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습니다.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기본권이고 침해돼서는 안 되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자기 결정권에는 분명한 제한이 따릅니다. 헌법재판소는 “좌석 안전띠를 매지 않을 자유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나오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보호 영역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험의 방지와 교통질서의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와 동승자는 좌석 안전띠를 매야 하고, 위반하면 범칙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자기결정권은 이처럼 제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모두가 자기결정권의 광범위한 보장을 주장한다면 결국은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임신 9개월째 태아에 대한 낙태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분만에 이른 아기를 고의로 숨지게 한 의사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그 누구도 모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태어난 아기는 비록 어머니의 손길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어머니의 자기결정의 대상, 즉 ‘객체’는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아무도 이견을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아기는 ‘비록 객체’가 아닌, ‘오직 자아’가 되는 것일까요.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와 주체가 된다”고 규정합니다. 계약에 관한 법률은 출생 이후에 비로소 사람으로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정하고 그에게 권리능력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경우에 있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출생 이전의 존재를, 비록 살인죄의 객체로서는 아닐지라도 형법으로 강력히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생명이 온전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야만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차박’이 유행합니다. 차 안에서 쉬면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저녁노을을 감상할 때 안전띠 착용을 강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운전을 시작하면 반드시 안전띠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이와 같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는 명시적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달리 말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자기결정권 제한은 정당하고, 다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서 제한은 이미 내재돼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헌법재판소가 입법 시한으로 정한 2020년 12월 31일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내재돼 있는 자기결정권의 제한 내용이 불분명한 상태로 남았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인해 발생하는 산모의 건강 문제 및 안전한 임신 중단을 위한 의료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입니다. 자기결정권의 무제한은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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