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백만원 번다” 달콤한 유혹… 돈만 잃고 탈퇴도 어려워

입력 2021-04-05 04:02
주식 리딩방을 운영하는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은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사의 수익률을 자랑하며 영업을 시도했다. 오른쪽은 텔레그램 안에서 이뤄진 리딩 과정. 매수에서 매도까지 1~2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리딩방 피해자 제공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뛰어들면서 ‘주식리딩방(유사투자자문업)’ 피해가 늘고 있다. ‘주린이(주식 초보자)’에게 고수익을 미끼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가입비를 내게 한 뒤 환불거부, 과도한 위약금을 부여하는 등 업체의 행태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해야 할 한국소비자원은 무용지물로 전락했고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기능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리딩방의 실제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원인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실질적인 해법을 4회에 걸쳐 모색한다.

경수씨는 아침을 고대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스탁이 운영하는 주식 리딩방에 가입한 첫날이었다. 오전 9시 주식시장 개장 전, 경수씨는 부푼 기대감에 VIP 방 입성을 안내했던 매니저의 메시지를 반복해 읽었다.

“저희가 매일 회원님들께 5~10%씩 수익을 내드리고 있어요. 1000만원 투자해서 하루 5%씩만 수익을 얻더라도 한 달이면 수백만원, 1년이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어요.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정식 업체인 만큼 저희만의 투자 기술이 있답니다. 아니다 싶으면 중도 해지하세요. 1주일 이내면 일별 사용료만 빼고 100% 환불해드립니다.”

15개월 동안 서비스받는 조건으로 낸 가입비 현금 300만원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매수·매도 가격과 타이밍을 제시하는 ‘리딩’ 과정은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이뤄졌다. 경수씨를 포함한 회원 2000여명은 텔레그램 대화방을 진두지휘하는 자칭 ‘단타 기법 최고 전문가’의 신호를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1분 만에 끝난 리딩 “수익 났습니다”

개장 후 5분이 지나지 않아 첫 지시가 날아왔다. “AA 종목 모니터링하겠습니다.” 주가가 오를 낌새가 있으니 매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AA 종목을 검색하려는데 1900원에 매수 사인이 떨어졌다. 5초 만이었다. 경수씨의 손가락이 마음만큼 급해졌다. 가격과 수량을 입력해 매수 버튼을 눌렀지만, AA 종목의 주가는 그새 4% 넘게 올라 있었다.

가격 정정을 고민하는데 텔레그램 알람이 다시 울렸다. “수익 났으니 절반 매도합니다” “상승 시도 있는데, 더 올라가든 말든 욕심 없이 전량 매도합니다” “수익 다 챙겼고 다른 종목 찾아보겠습니다” 5초 간격으로 메시지가 쏟아졌다. 1분 만에 리딩이 끝난 것이다. 당황한 경수씨는 AA 종목 주문 취소 버튼을 황급히 눌러댔다.

5분 뒤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절치부심한 경수씨는 BB 종목을 4만8500원에 매수하라는 지시에 곧바로 대응, 100주 매수에 성공했다. 몇 초간 1~2% 상승 움직임을 보이던 BB 종목은 눈 깜짝할 새 하락세로 반전했다. 1~2분 만에 주가가 10% 이상 떨어졌다. 해당 종목을 매수가였던 4만8500원에 다시 매도하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경수씨는 주가가 바닥으로 꼬꾸라진 뒤에야 전량 매도할 수 있었고, 12%(58만2000원) 손실을 봤다.

☆☆스탁의 리딩은 늘 이런 식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초 단위 거래 방식이 계속됐다. 업체는 이미 급등세를 보이는 종목을 한두 박자 느리게 알려줬다. 그럴 때마다 경수씨는 추격 매수를 노렸다가 ‘상투’(주가변동의 폭이 클 때 가장 고가권의 주가 수준)를 잡아 돈을 잃었다. 또 업체가 매수 사인을 보낸 종목 주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거나, 매수 지시 후 급락해 손실을 본 경우도 많았다.

전액 환불 된다더니 “38만원만…”

가입 4일 만에 200여만원의 손해를 본 경수씨는 결국 리딩방을 탈퇴하기로 했다. 4일 치 사용료 정도는 ‘인생 수업비’로 여기며 깔끔하게 지불할 마음이 있었다.

업체는 이상하게도 문자 대화만을 고집했다. 경수씨가 환불을 요청하자 업체 측은 “가입비로 300만원을 내셨는데 그중 VOD(주문형 비디오) 가격 259만원과 일 사용료를 제외하면 38만원 정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난데없는 VOD의 존재에 놀란 경수씨가 “그런 걸 산 적도 본 적도 없다”고 하자 담당자는 “계약서에 동의한 증거가 있고 녹취도 다 있다”며 당당하게 받아쳤다.

경수씨는 카톡으로 받은 전자문서 형식의 계약서를 살폈다. 작은 글씨의 환불 특약 약관 중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서비스 종료 후 업체의 리딩을 따랐는데도 손해를 볼 경우 100% 환불 가능하지만, 해당 특약에 동의하면 동시에 259만원짜리 VOD 구매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100% 환불 가능하다는 설명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그들이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

경수씨는 스마트폰에 자동 녹음돼 있던 매니저와의 통화를 다시 들어봤다. 숨 쉴 틈 없이 내뱉는 매니저의 말을 여러 번 들은 뒤에야 VOD라는 단어가 숨어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서비스 기간 종료 후 ☆☆스탁에서 안내한 대로 80% 이상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손실 시에는 회비를 전액 환불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님은 주도주종목 선정 기법과 세력매집봉 탐색기법 VOD를 제공받고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 자료를 제외한 계약 체결일로부터 7일 이내 환불 수수료 없이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입 전 설명을 충분히 들었으며, 디지털 콘텐츠 파일을 제삼자에게 유출하거나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하지 않을 것에 동의하십니까?”

매니저는 ‘전액 환불’ ‘7일 이내 환불’ 등을 강조했다. 그 사이에 ‘디지털 콘텐츠 자료를 제외한’이라는 덫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경수씨는 그때로 돌아가 설명을 다시 듣는다 해도 문제가 뭔지 모른 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VOD는 어디 있는 걸까. 한참 고민하던 경수씨는 가입 직후 매니저가 VIP방 연결 링크를 준다며 만든 텔레그램 대화방을 찾았다. ‘매매 시작 전 필수 확인하셔야 한다’며 보내온 포털 블로그 링크에 이어 ‘☆☆스탁 동영상 강의 1, 2’란 제목의 압축파일 두 개가 아무 설명 없이 전송돼 있었다. 경수씨는 그제야 그것이 업체가 말한 VOD임을 깨달았고,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경수씨는 “매니저로부터 관련 내용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으니 불공정 계약이며, 만약 알았다면 가입조차 안 했을 거다. 환불 안 해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따졌다. 그러나 업체 측 담당자는 자신 있는 말투로 답했다. “우린 금감원에 신고된 합법적인 업체입니다. 다른 소송에서 이긴 사례가 많으니 할 테면 한번 해보세요.” 경수씨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주린이 울리는 리딩방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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