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발 반도체 패권주의 대응에 정부·기업 힘 모아야

입력 2021-04-05 04:01
미국 백악관이 오는 12일(현지시간) 개최하는 반도체 수급 문제 관련 회의에 삼성전자를 초청했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 차질을 가져온 반도체 품귀 사태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할 예정이다. 백악관은 우선 삼성전자에 단기적인 반도체 공급 확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더 지어 달라고 삼성전자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반도체 패권주의’ 행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 자체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작업을 지난 2월부터 착수했고, 지난 1일에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500억 달러(56조45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 3년 만에 재진출한다고 선언했다. 대만 TSMC가 점유율 1위, 삼성전자가 2위인 시장에 인텔이 뛰어든 것이다. 인텔 CEO 펫 겔싱어는 “컴퓨터 칩 공급량의 80%가 아시아에 집중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시아에 넘겨줬던 반도체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읽힌다. 미국 기업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낸드플래시 업계 2위인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 미국 기업이 키옥시아를 흡수하면 단숨에 업계 1위 삼성전자를 위협하게 된다.

반도체 문제는 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까지 의제로 올랐다. 미 고위 당국자는 회의 전날 브리핑에서 “3국은 반도체 제조 기술의 미래에 관한 많은 키를 쥐고 있다”며 반도체 공급망 문제도 의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반도체가 중요한 안보 이슈로, 국가적 전략 자산으로 떠오른 셈이다.

지금 불붙은 반도체 패권 경쟁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미국이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미·중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도체 자체의 산업적·전략적 중요성이 워낙 커져서 유럽연합(EU)과 일본, 대만 등도 달려들고 있다. 한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현재 우위에 있다고 마음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패권 경쟁에서 밀린다면 한국의 반도체 아성이 금세 위태로워질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지혜를 발휘하도록 정부가 적극 도와야 한다.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