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사적 연락 금지”… 비서만 다그친 서울시 성추행 방지책

입력 2021-04-05 04:03
연합뉴스

서울시가 ‘박원순 성추행’ 후속대책의 일환으로 ‘비서 업무 매뉴얼’을 공개했다. ‘시장에게 사적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등 비서의 10가지 금기 사항을 규정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발단이 되는 ‘시장의 사적 지시’를 제재하는 구조적 방안은 전무했다.

서울시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 서울시 이행계획’을 4일 공개했다. 지난 1월 인권위가 서울시에 요구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후속 조치를 담았다.

비서가 해서는 안 되는 10가지 사적 업무 유형을 규정했다. 대표적으로 업무와 관련 없는 사적 연락, 문자메시지·사진·이모티콘 전송이 금지된다.

겉옷 입혀 주기와 옷매무새 다듬어 주기도 불가능하다. 근무와 관련 없는 개인 일정관리 및 개인 행사 동행이 제한된다. 시장의 방문객 응대 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 개인·가족 여행 교통·숙박예약 및 수행이 금지된다.

개인 논문 및 강의자료 작성·검토와 시장 개인·가족·지인을 위한 물품구매·대여, 시장 및 친인척 경조사 참석 수행도 할 수 없다. 공적업무추진과 관련 없는 시장의 개인적인 예산 사용, 금융업무 등 사적 목적의 개인 심부름을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정작 시장이 사적 지시를 내릴 경우 이를 제지하거나 비서 입장을 대변해줄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비서가 직접 거절 의사를 밝히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조사담당관에게 신고하라고 안내할 뿐이다. 비서의 사적 업무는 대부분 시장의 지시로부터 비롯되고, 비서가 그런 지시를 거역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데도 시장의 부당 지시를 감독하거나 제지하는 구조적인 장치 없이 그저 피해당사자의 금기 사항만 지정한 셈이다.

시장을 향한 대책은 겨우 ‘유의해야 할 사항 교육’에 그쳤다. ‘사적 용무는 지시하지 않는다’ ‘업무 배정 또는 지시 전,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성차별적으로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의 일탈을 견제하기보다 비서의 부담만 늘린 매뉴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