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자료 삭제’ 혐의 산업부 공무원 2명 보석 석방

입력 2021-04-02 04:04
연합뉴스

원전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관련 자료를 대량으로 삭제하거나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대전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박헌행)는 1일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A씨(53)와 서기관 B씨(45)의 청구를 받아들여 보석을 결정했다.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감사원법 위반·방실침입 혐의로 지난해 12월 4일 구속된 이후 118일 만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고, 구속상태에서는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들은 오는 20일로 예정된 두 번째 공판준비절차를 불구속 상태에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첫 공판준비기일 당시 쟁점 정리, 증거목록 확인 등이 이뤄지지 않았던 만큼 2차 공판준비기일부터 본격적인 공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A씨와 B씨는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가 착수되자 관련 증거 자료,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 등의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혐의에 연루된 또 다른 공무원 C씨(50)의 경우 혐의 일부를 시인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됐다.

A씨와 B씨의 구속 기간이 길어지자 이들의 변호인은 지난달 9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 당시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고 구속된 상태에서는 피고인들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변호인들은 당시 “삭제된 자료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을 해야 되는데, 교도소 내부에서는 전자기기를 이용할 수 없어 자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며 “제대로 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30일 A씨와 B씨에 대한 보석 심문을 진행했다. 심문에서도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변호인 접견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해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재차 폈다. 반면 검찰은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도 피고인들이 이미 증거를 인멸한 전력이 있고, 구속 이후 새로운 사정 변경이 없다며 재판부에 석방을 불허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 결정에 따라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기각에 이어 이들마저 보석으로 풀려나며 수사에 대한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지 않은 만큼 조사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