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한숨 “3교대인데, 전 아무래도 백신휴가 못가겠죠?”

입력 2021-04-02 00:04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35)는 지난 26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 이후 2차 접종을 기다리고 있지만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접종 직후 근육통과 고열 등 이상반응으로 꼬박 이틀 동안 업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남아서다.

A씨는 1일 “마음 같아서는 2차 접종 때 정부 권고대로 백신 휴가를 쓰고 업무에 복귀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정된 병원 인력으로 매일 3교대 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혼자만 백신을 맞는 것도 아니다 보니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가중될까 휴가를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A씨는 아무런 행정 지원 없이 권고 수준에만 그친 백신 휴가제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이미 1차 접종이 시작되기 전부터 백신 이상반응이 수차례 보고됐던 상태였다”며 “병원 간호사들 가운데 30%는 여전히 ‘백신 안 맞고 병원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접종을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정부의 목표대로 의료 종사자의 접종률을 더 끌어올리려면 휴가를 강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코로나19 백신 휴가제가 처음 시행된 1일 현장에서는 권고에 그친 이번 정부의 정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인력 대체자를 찾기 힘들어 휴가를 낼 수 없는 소규모 병원 종사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백신 휴가제가 허상에 가깝다고 하소연한다.

8년째 지체장애인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모(66·여)씨 역시 2분기 접종대상자 목록에 포함됐지만 여전히 고심 중이다. 고위험군을 직접 보살피는 만큼 백신 접종은 필수지만 한편으로는 몸에 무리가 갈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용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태우는 등 직접 힘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육통이나 몸살 증세가 심하게 올까 가장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불안정한 고용 사정도 김씨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하루라도 예고 없이 빠졌다가는 바로 고용인에게 계약을 해지당할까 걱정하는 처지였다”며 “만약 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기더라도 고용인에게 선뜻 쉬겠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한창 등교 수업을 이어가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충남권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유모(33)씨는 “2분기 우선접종 대상자가 됐지만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수업 결손이 많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항의가 우려돼서라도 휴가는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백신 휴가제 도입 취지에 맞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휴가자의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고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등 구체적인 유인책 없이는 근무 환경에 따라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