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광동 (14) 파키스탄의 ‘저주받은 땅’을 ‘축복의 땅’으로

입력 2021-04-05 03:03
김광동 더멋진세상 대표가 2014년 파키스탄 후쉬푸르에서 마을 식수사업 준공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정식 국호는 파키스탄이슬람공화국이다.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이슬람의 도시’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 또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소수민족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 정치가라면 순교까지 각오해야 한다.

2010년 10월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예배에 샤바즈 바티 파키스탄 소수민족부 장관이 참석해 인사를 나눴다. 그는 파키스탄 최초의 그리스도인 장관이자 40개 부처 장관 중 유일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파키스탄 인구의 2.5%에 불과한 고통 속의 그리스도인과 56개 소수민족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생명을 걸었다”면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존귀함을 누리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파키스탄 내각에 소수민족부가 탄생한 것도 평생 인권 운동가로 살아온 바티 장관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의 엄격한 신성모독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이슬람 과격파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다. 급기야 2011년 3월 출근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쏜 기관총 99발을 맞고 젊은 나이에 순교하고 말았다. 그의 이름을 딴 복지재단이 샤바즈 바티 메모리얼 트러스트(SBMT)이다. 더멋진세상은 바로 이 SBMT를 통해 ‘저주받은 땅’ 후쉬푸르의 마을 개발을 돕기로 했다.

후쉬푸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평균 수명이 40세 안팎이었다. 땅이 소금기를 머금은 탓에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저주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일부러 척박한 곳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줬다. 2010년부터 2년 연속 최악의 홍수가 덮쳐 주민들은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2014년 6월 후쉬푸르 마을의 식수·농수 사업 1단계 여정으로 급수탑이 준공됐다. 더멋진세상 사무총장인 김창옥 당시 전도사님과 함께 준공식에 참석했다. 1만여명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축제가 벌어졌다. 마을 촌장은 인사말에서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깨끗한 마실 물과 농사를 지을 물을 보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그러고는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이 당신들을 우리에게 천사로 보내셨습니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마치고 라호르의 숙소로 돌아와 귀국을 준비하는데 자정 무렵 경찰이 들이닥쳐 빨리 짐을 싸라고 했다. 소수민족부가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한국에서 온 NGO가 저주받은 땅 후쉬푸르를 축복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게 못마땅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우리를 향한 총격 테러를 준비한다고 했다. 황급히 짐을 챙겨 방탄차를 타고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으로 6시간 넘게 달렸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주의 일꾼을 굳게 지키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