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두 슈퍼파워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같은 날 우리 정부의 안보수장은 미국에서 중국 견제를, 외교수장은 중국에서 미국 문제를 각각 논의한다. 이는 최근 고위급회담에서 미·중 양국의 충돌 이후 이어지는 외교안보 회동으로, 미·중 양측에 낀 우리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일 중국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한다고 청와대와 외교부가 31일 발표했다. 시차를 감안하면 거의 동시에 미·중 양측에서 우리 정부 고위인사가 참석하는 외교안보 라인의 회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한·중 외교장관 회담 장소가 미·중 충돌의 핵심요인인 대만과 가까운 푸젠성 샤먼에서 이뤄지는 것을 두고 자칫 초강대국의 패권경쟁에 우리 정부가 휘말리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 장관은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거듭 말씀드리지만, 미·중은 우리 선택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며 “또 미국이나 중국도 우리에게 그러한 요구를 해 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본입장은 분명하고 절대 모호하지 않다”며 “한·미동맹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한·중 관계도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도 “서 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협의를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한·미·일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방미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우리 고위급 인사로서는 첫 방문으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양측에서 같은 날 이뤄지는 회동의 성격을 보면 논의 내용은 정반대다. 서 실장이 참석하는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선 중국 견제를 위한 3국 공조를, 정 장관이 참석한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입장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자칫 두 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상반된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최근 한·미 2+2 공동성명에선 북한과 중국 관련 직접적 표현이 빠지는 등 우리 정부의 입장이 고려된 측면이 있지만, 이번 한·미·일 안보 협의에선 미국이 더욱 강경한 대중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 역시 나온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 역시 중국이 자신들의 입장을 우리 측에 강하게 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이 추진하는 반중 협의체인 쿼드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중국의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이 이번 회담 장소를 푸젠성 샤먼으로 잡은 것도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란 지적도 있다. 대만을 마주보는 샤먼에 우리 정부 고위인사를 불러들여 내정불간섭 원칙을 한국과 공유하고 있다는 대미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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