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법안에 대한 의견조회를 국회로부터 요청받았지만 “아직 내부 검토 중”이라며 입장을 유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권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일환으로 추진한 중수청 입법은 지난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한 표면적인 이유였다. 대법원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가운데 중수청 법안의 ‘3월 발의, 6월 통과’를 목표로 했던 여권의 움직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후로 주춤한 모양새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중순 황 의원과 김용민 민주당 의원 등 여권이 추진하는 ‘중수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대한 국회의 의견조회 요청에 대법원은 1개월이 지난 이날까지도 입장을 회신하지 못한 상태다.
‘의견 표명이 이뤄졌느냐’는 한 야당 의원의 자료 요구에 대법원은 “구체적인 입장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논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일 법안에 대한 의견조회를 요청받은 법무부가 지난 12일 국회에 “국민적 공감대부터 축적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던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토에 시일이 필요한 경우 기한을 넘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통상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검경의 상위기관이 아니라는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대법원이 장고에 들어간 것은 중수청이 한국 형사사법체계에 미칠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으로 분석된다. 중수청 법안은 기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신설하는 것을 전제로, 검찰이 담당하는 6대 주요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별도 기관을 설치하는 게 골자다. 중수청이 설치되면 수사체계는 중수청, 공수처, 경찰 등 3개 수사기관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는 동시에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통해 형사사법체계의 근본적인 상황을 바꾸는 것이어서 검찰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중수청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검수완박’ 시도가 LH 사태 이후 다소 어색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최근 500명 규모의 수사전담팀 구성을 지시하며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여권의 검찰개혁특위 움직임도 주춤한 모양새다. 검찰개혁특위 위원들이 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것은 이달 초가 마지막이었고 전문가 공청회 등도 멈춰 있는 상태라고 한다. 검찰개혁특위의 한 위원은 “최근 1~2주 동안 특별한 활동이 없었긴 하지만 검찰 개혁 방향성은 달라진 게 없다”며 “재보궐선거 이후 4월 초부터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안의 세부 내용을 정한 뒤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