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펀드 매니저 빌 황이 운용하는 헤지펀드 ‘아케고스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초래한 막대한 손실에 미국 월가가 충격에 빠졌다. 아케고스에 돈을 빌려 준 유명 투자은행들의 손실액이 총 1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아케고스 투자금 확보의 통로가 된 총수익스와프(TRS) 등 파생상품 계약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현지시간) 투자은행 JP모건은 아케고스의 파산 위기로 은행들이 입을 손실액은 최대 100억 달러(약 11조3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손실액은 32억 달러로 보인다고 영국 베렌버그 은행은 예상했다. 앞서 일본 최대 투자은행 노무라도 해당 펀드로 20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세계 유명 투자은행들이 헤지펀드 하나 때문에 줄줄이 피해를 본 배경에는 TRS 파생상품 계약이 있다. TRS란 금융사가 아케고스와 같은 투자자 대신 주식 등 기초 자산을 매입해주고, 금융사는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는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아케고스의 자산은 100억 달러였지만, 빌 황은 TRS를 통해 약 500억 달러의 투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라임자산운용이 과도한 TRS 계약으로 펀드 부실을 촉발한 바 있다.
아케고스는 TRS로 조달한 자금으로 중국 기술주를 대거 사들였다. 그런데 최근 고평가 우려 등으로 기술주가 급락하면서 은행들은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을 했으나, 아케고스는 이에 응하지 못했다. 재빠르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주식을 처분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은 손실을 면했지만, 한 발 늦은 노무라, CS 등은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됐다.
이에 따라 투자은행과 증권사들이 TRS 계약을 통해 헤지펀드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제공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은행들이 그들의 ‘가장 부유한 고객’에게 대출해주다가 사기를 당하는 건 반복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중앙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향후 은행들은 대출 규모를 더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아케고스 사태의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개별 TRS 계약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다른 금융 기관에까지 손실이 전이되는 등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확률은 낮아보인다”며 “주가에 끼치는 영향도 증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도 “일시적으로 수급이 꼬이는 현상은 나타날 수 있지만, 시장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실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레버리지가 걸린 TRS 거래의 위험 요인에 대한 중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