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상 한계 있어도 역량 모을 때” 조남관 총장 대행, 檢 역할론 강조

입력 2021-04-01 04:06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가 열린 3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검사장들은 회의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대응 방안과 전담수사팀 구성을 점검했다. 연합뉴스

검찰이 부동산 투기 범죄의 양상을 ‘공적 정보’와 ‘민간 자본’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투기세력 실체 찾기에 돌입했다. 부동산 범죄는 관련자가 많고 장기간 벌어지는 만큼 최근 처분한 5년간의 사건을 되짚어 의미 있는 흐름을 발견하겠다는 것이다. 법령상 직접수사 범위 제한 등 한계가 있지만 국가 비상상황에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고 검찰은 강조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31일 오전 화상 형식으로 전국 검사장회의를 열고 “중대한 부동산 투기 범죄는 기본적으로 공적 정보와 민간 투기세력의 자본이 결합하는 구조”라며 “이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 사례들이 단순히 본인의 재산을 투입한 단독 범행일 수도 있겠지만, 전모를 살펴보면 공무원의 정보 흘리기가 동반된 ‘기업형 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화이트칼라 범죄’로 분류되는 부동산 투기 범죄는 정범 이외의 공범이 많고 수법이 지능적인 경향을 띤다.

검찰은 이러한 부동산 투기 범죄의 성격에 착안, 최근 5년간 처분된 부동산 범죄 사건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나간 일을 다시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숨은 투기세력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목적이다. 조 대행은 “과거 투기세력들이 새로운 개발 사업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관점에서 ‘기획부동산’ 등을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공무원의 개발정보 제공, 기획부동산의 설립은 검경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응했던 과거 1·2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수사 결과 등에서 다수 드러났었다. 당시 개발이 예정된 부동산을 미리 매입하거나 뇌물을 받고 투기세력에게 정보를 흘린 공무원들이 대거 사법처리됐다. 자금력 있는 전주를 동반, 임야나 농지를 대규모로 사들인 뒤 여러 필지로 쪼개 매각한 기획부동산의 실태도 확인됐다. 기획부동산이 단속됐는데 피해자들이 오히려 지가 하락을 우려해 수사기관에 비협조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최근 5년간의 사건들을 검토하면 공무원과 민간이 결탁한 의미 있는 흐름이 감지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는 단속 때 주요 인물이 잠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교묘한 수법 때문에 막대한 피해에도 범행 전모가 밝혀지지 못한 사건이 많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민간의 투기세력이 어디 있는지, 어떤 규모인지 찾아내야 결탁의 선을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투기세력의 실체를 찾겠다는 다짐은 법령상 한계를 말하던 최근의 검찰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기도 하다. 올 들어 직접수사 범위가 축소된 검찰은 LH 사태 대응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고, 정부가 검찰의 역할을 강조할 때 의아해했었다. 조 대행은 검사장들에게 “책임 있는 자세로 지혜를 모아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언제는 수사하지 말라더니 이젠 하라고 한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다고 얻는 것도 없다”며 “어떻게든 역량을 모으는 게 공무원의 자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