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거대 여당의 반성문

입력 2021-04-01 04:02

4·7 재·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현재 상황과 지난해 4월 총선을 비교해보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게 있다. 여당의 ‘문재인 마케팅’ 실종이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선 여당 후보 선거공보물과 현수막에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친문 적자’ ‘문재인정부의 성공’ 구호가 쏟아졌다. 공약보다 문 대통령을 한 번 더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여당 선거운동에서 ‘문재인’ 이름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슬로건도 없어졌다. 그 빈자리는 “사람을 보고 뽑아달라”는 이른바 인물론이 채웠다. 정당보다는 후보 개인의 면면을 봐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취임 직후인 2017년 봄 84.1%(리얼미터·5월 4주) 84.0%(한국갤럽·6월 1주)로 정점을 찍었다. 올 3월은 34.1%(리얼미터·3월 3주), 34.0%(한국갤럽·3월 4주)로 연일 최저점을 기록 중이다. 올해 초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 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요즘 당명이 없는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후광 효과는 유효기간이 다한 셈이 됐다. 격세지감이다.

민주당의 급격한 태세 전환 역시 극적인 변화 중 하나다. 선거 막바지 당 지도부의 톤이 달라졌다. 이른바 ‘반성 전략’ 또는 ‘읍소 전략’이다. 4년간의 주장·정책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것도 다반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규제 일변도였던 부동산 정책 역시 극적으로 바뀌었다. 민주당의 재보선 사령탑인 이낙연 전 대표는 “저도 화가 나 죽겠다. 후회도 되고 한스럽다”고 했다.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다” “사죄의 말씀” “현실을 외면했다” “책임을 면치 못한다” 등도 여당에서 주로 나오는 레퍼토리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반성은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많은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달아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 다음 독선과 아집에 빠졌다. 특히 국회 의석 180석으로 무장한 뒤엔 숫자를 앞세워 개원 협상 때부터 관례를 무시했고, 잇따른 경고음에도 여러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반대 목소리는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몰아 철저히 배척했다. 그나마 당내에서 나오던 소수 의견은 공격 대상이 됐다. 이후 민주당 내에 쓴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만 믿고 따르라’던 정부 여당의 나홀로 질주로 국민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누렸을까. 가장 상징적이자 대표적인 사례, 부동산 정책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 청와대 대변인은 ‘관사 재테크’를 하면서 거액 대출로 재개발지역 상가를 매입했다. 보증금 인상을 제한한 전월세 상한제 시행 이틀 전엔 청와대 정책실장이 예금 14억원을 놔두고 세입자에게 보증금 14%를 올려 받았다.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여당 의원은 전월세 상한제 한 달 전 세입자에게 월세를 크게 올려 받았다. 그 의원은 전월세 상한제를 대표발의한 주인공이다.

이 과정에서 “나도 내 집에서,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서민들의 꿈은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시장 질서를 역행해온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이를 ‘본질을 왜곡한 것’으로 치부하다 최악의 상황이 돼서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선거를 눈앞에 둔 지금 여당의 반성문을 바라보는 많은 유권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런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여당은 진정한 성찰, 협치, 열려 있고 듣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행동이 아닌 말뿐인 반성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이제 없다. 그만큼 여당이 지금까지 너무 나갔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