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되면 돈방석”… 땅의 유혹, 땅을 치다

입력 2021-04-03 04:01

#1. 주부 이모(57)씨는 5년 전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월급을 준다”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대구의 한 부동산 법인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씨가 방문한 사무실에서는 이씨와 연령대가 비슷해 보이는 50~60명이 부동산 관련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씨는 며칠간 교육을 받으며 “개발되면 3년 내에 2~3배로 팔 수 있다”는 직원의 권유에 솔깃해 경기도 평택시의 땅 약 10㎡(약 3평)를 1600만원에 매입했다. 지인들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씨가 평당 500만원대에 매입한 땅은 5년이 지난 지금 평당 10만~20만원에도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2. 경남에 사는 조모(59)씨는 2015년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 A씨가 “투자하기 좋은 땅이 있다”고 소개해 울산 울주군의 토지 약 1000㎡(약 300평)를 1억1400만원에 샀다. 그는 수년간 친하게 지내온 A씨를 믿고 16명과 지분을 나눠 땅을 샀다. 2~3년이 지나도 개발이 이뤄지지 않자 조씨는 그제야 땅에 대해 알아봤고, 해당 토지의 입구가 다른 사람 소유라 개발이 불가능한 맹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3 김모(27·여)씨도 지난해 5월 친언니 거래처 사람의 소개로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 회사를 방문했다. 회사 관계자는 강원도 한 지역의 지도와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춘천 레고랜드 등 호재가 있어 곧 2~3배로 값이 뛸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총 58명이 지분을 나눈 해당 필지에 3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좀처럼 개발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기획부동산 사기 관련 기사를 본 김씨는 불안한 마음에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거부했고 결국 김씨는 지난해 9월부터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사전 투기’ 논란이 계속되면서 기획부동산을 통한 투자나 투기 가능성 등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기획부동산의 유혹에 넘어가 맘고생을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기획부동산으로 경제적 손실을 본 이들은 공통적으로 부동산 개발 정보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당시 지도상으로 보니 (권유받은 땅의) 위치가 울산 간절곶 바로 앞이어서 접근성이 좋을 것 같고 친구도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 바로 매입했다”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제로는 개발하기 어려운 맹지였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묻지마 투자’를 부추겼다. 이씨는 “부동산 관계자가 ‘땅을 사면 3년 후에 2~3배로 바로 팔 수 있으니 대출을 받아서라도 일단 사라’고 계속 투자를 유도했다”며 “현재도 대구에 비슷한 기획부동산이 다수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 생활하며 월급을 모으고 적금을 부어도 이자가 적어 목돈을 모으기 어려운 데다 부동산 폭등으로 한꺼번에 큰 돈을 번 사람들 얘기를 듣다 보니 부동산 투자에 솔깃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처럼 기획부동산에 속아 토지를 매입한 경우에도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부동산 개발 관련 사실을 허위로 고지했다는 점, 그로 인해 피해자가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최근 LH 직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를 바라보며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신들은 기획부동산의 거짓 정보에 속았는데 뉴스에 나오는 이들이 산 땅은 다 오르지 않았냐는 것이다. 김씨는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고급정보를 가진 사람들만 결국 돈을 번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도 “어차피 진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허망했다”고 토로했다.

김지애 이한결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