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 주고 1000만원 내라면 떠날 수밖에”… 원주민의 눈물

입력 2021-04-01 04:02 수정 2021-04-01 14:04
지난 30일 택지개발을 위해 철거가 진행 중인 경기도 고양시 장항지구의 모습.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작 개발지역에선 원주민이 쫓겨날 처지에 놓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주민 정착을 돕고자 도입된 대토(代土)보상제가 투기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애먼 원주민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장항지구 등 택지개발지역에선 2019년 대토보상제의 허점을 노린 거래가 횡행했다. 시행업체들이 전매가 제한된 원주민의 대토보상권을 매매가 아닌 신탁으로 위장해 거래하는 등 편법이 활개쳤다. 당시 업체들은 현금보상가의 110~120% 가격으로 대토지주들의 보상권을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항지구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31일 “돈 없는 원주민들은 권리를 팔고 떠날 수밖에 없었고 투기꾼들이 땅값만 잔뜩 올려놨다”고 말했다. 그는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보고 들어가는 게 대토 개발”이라며 “언제 개발이 마무리될지 모르기 때문에 수익을 내려면 몇 년을 버텨야 한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정보나 풍부한 자금력 없이는 투자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장항지구 방송영상밸리지역원 주민 340여명 중 토지 강제 수용에 반대하는 100여명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개발 주관사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를 상대로 이의제기를 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토지 수용에 응한 주민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 다수다.

대책위 측은 GH가 현행 감정평가액 수준으로 땅값을 받으면 떠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토지 수용 당시 받은 보상가와 택지개발 이후 재매입에 적용되는 토지 감정평가액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평당 400만~500만원 수준의 보상을 받았지만 현재 추정되는 평당 감정평가액은 1000만원을 웃돌아 평당 500여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농민이 대다수인 원주민들은 비싸진 땅값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40년간 벼농사를 지은 이모(63)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벼농사를 했겠느냐, 투기꾼들처럼 버드나무나 빽빽하게 심었지”라면서 “물정 모르고 농사만 지은 게 죄”라고 토로했다. 주민 홍모(59·여)씨는 “원래대로 여기 살면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과한 요구냐”고 반문했다.

다른 개발지역에서도 유사한 불만이 속출하자 국토교통부는 2020년 2월 도시개발 지역에서 이주택지 공급 시 감정가가 아닌 조성원가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발업무지침을 개정했다. 하지만 장항지구는 개발 고시 시점이 2019년 6월이어서 개정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책위는 개정 지침이 적용되면 평당 600만원에 매입할 수 있어 부담이 훨씬 덜어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GH 관계자는 “법 개정 부칙상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다”며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토보상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 보유 기간별로 차등해서 보상의 정도를 달리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30년 보유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단기 보유자에겐 덜 한다면 자연스럽게 투기 수요를 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정우진 신용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