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완벽보다 흠결 많은 삶이 더 사랑스럽다

입력 2021-04-01 19:28 수정 2021-11-04 16:41
페미니스트는 명사가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 간다. 그런 한에서 페미니스트는 고정된 이름이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이며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가깝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도 완벽한 페미니스트일 수 없으며 ‘완벽한 페미니스트’란 허구적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실은 어떤 -ist도 완벽한 무엇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런데도 완벽한 페미니스트라는 자격증을 발급받지 못한 것처럼 그 앞에서 움츠러드는 이유는 여성들에게 논증의 역할과 강박적 완결성이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책 ‘AI 시대, 본능의 미래’는 인공지능 시대에 마주할 인간 본능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가령 로봇과의 섹스가 보편화된 세계에서 성욕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인공자궁을 둘러싼 논쟁은 얼마나 격렬할지 등을 앞서 전망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임지은은 페미니즘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삶을 응시하며 변화 속에서의 스스로를 기록한다. 요컨대 이 책은 ‘흠결 많은 어느 페미니스트’의 고백록이자 스스로에게 솔직해짐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성장기이며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한 인간의 번뇌 과정을 보여 주는 투명한 존재론이다. 그는 묻고 답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이런 시선은 지나친 낭만성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시선이 좋다. 실은 아주 많이 공감한다.

에세이집의 제목은 ‘연중무휴의 사랑’이다. 임지은이 페미니즘과 자신의 관계에서 모종의 불일치를 느끼는 이유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그가 살아온 사랑의 역사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다. 그에게 연애란 상대방을 덜 모르기 위한 노력이며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사랑은 그러한 상태를 위해 나아가는 행위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타인들과 맺었던 숱한 관계 안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를테면 정욕 덩어리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인 ‘나, 누구보다 고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비건으로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나, 요컨대 어딘가 모순된 ‘나’.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안전한 욕망과 불완전한 가치관을 응시하며 성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은 휴일 없이 일하는 ‘사랑’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숱한 사랑의 형태를 통해 인간이란 형태가 완성되어 간다. 사랑이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된다.


‘AI 시대, 본능의 미래’는 말 그대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본능에 나타날 변화를 예측하는 책이다.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가인 제니 클리먼의 취재기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임지은의 일상 에세이와 연결해서 읽을 거란 내 얘기를 듣고 서효인 시인은 고개를 저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책이라는 사실엔 나도 이견이 없다. 그건 정말 사실이지만, 앞선 책에서 ‘인간의 일’이라 여겨졌던 사랑에 미래 기술이 개입되었을 때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간의 본능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취재한 이 책을 떠올리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제니 클리먼은 기술이 가져올 ‘인간성’의 변화에 주목한다. 임지은이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며 인간성을 정의한다면 제니 클리먼은 미래를 상상하며 인간성을 정의한다.

예컨대 로봇과의 섹스가 지금보다 보편화된 세계에 인간의 성욕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인공자궁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얼마나 격렬한지, 배양육을 만들어 내는 것이 채식 중심의 삶을 발전시키는 것인지 아닌지…. ‘연중무휴의 사랑’이 흠결 많은 인간의 마음을 통해 인간에 다가간다면 ‘AI 시대, 본능의 미래’는 인간의 흠결을 해결해 주는 로봇, 혹은 기술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인간’이라는 거대한 흠결을 만들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섹스 로봇을 만드는 건 노예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고, 노예를 통해 일반화될 교감 없는 관계가 가져올 결과는 사뭇 비극적일 것이다.

기술의 발전 앞에서 재정의될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섹스 인형과 결혼한 남자, 고객 만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리모 전문가, 친구의 죽음을 도운 제빵사…. 임신 과정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 리얼돌과의 ‘완벽한’ 섹스만으로 충분한 세상,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세상,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세상. 그곳에서 살아갈 결핍 없는 인간은 결핍이 곧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보다 행복할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가 ‘되어’ 가고 페미니스트가 ‘되어’ 가는 흠결 많은 삶보다 더 사랑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게는 더 사랑하는 삶이 더 인간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