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목회를 하셨고 나는 교회를 참 좋아했다. 언젠가 제주도에 갔을 때 이틀간 비가 계속 내려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비 좀 그치게 해주세요’ 하며 기도하자 얼마 후 빛이 비치며 해가 쨍쨍 났다. 동생은 ‘우연이야, 우연’ 했지만 나는 기도 응답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맛 잃은 소금처럼 밟히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 속에 증언하리라’는 결단을 했다.
그래서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작은 법규와 규범을 철저히 지키며 상품권 하나를 받아도 십일조를 계산하고 어려운 분들을 위한 십일조를 따로 모으고, 장학금은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 이런 내 삶에 감동해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사람도 나오고, 동생은 살아있는 사람 중에 형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나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스스로 세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진짜를 찾았다며 ‘드라마 보듯 하지 말고 무릎 꿇는 심정으로 보라’며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소개했다. 정말 놀라웠다. 상황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는 모습들은 바로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변화와 선생님을 통한 학생들의 변화는 충격이었다. ‘아니, 교회 아이들도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학교에서 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실 하나뿐인데….’ 부활도 믿고 예수님이 주인이시라고 말은 해도 내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였다. 어떻게 예수님이 주인이 될 수 있는지 풀리지 않고 삶 속에서의 노력도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마침 한마음교회 수련회에 참가해 어느 형제를 만나 ‘부활과 주 되심은 별개로 생각되고, 도무지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는다’며 솔직히 털어 놓았다. 형제는 ‘주 되심이 문제가 아니라 부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랬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었지만 내게는 전혀 충격과 감격이 없었다. 부활을 내 느낌과 감정으로 믿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비춰졌다. ‘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내가 주인 되어 전능자께서 죽으셔야 했구나. 그런데도 믿지 않았으니 이 죄를 어찌합니까. 하나님, 하나님을 버리고 제가 주인 된 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만 온전히 저의 주인이십니다.’ 부활과 주 되심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마음 중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내게 기쁨이 임하며 그동안 놀라기만 했던 간증자들과 같은 고백이 드디어 나왔다. 내 힘과 노력으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려다 지쳤는데 부활이란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 소개팅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더니 주선한 친구가 ‘아니, 왜 소개팅에서까지 부활 얘기를 했어’ 하며 원망했다. ‘미안해. 그런데 어쩌겠어. 내겐 부활밖에 없는데…’ 했더니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내겐 부활하신 예수님밖에 없다.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다 지친 내게 부활이라는 완벽한 증거를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배동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