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광동 (13) 우여곡절 끝 NGO 설립… 첫 사역은 일본 쓰나미 현장

입력 2021-04-02 03:03
더멋진세상 자원봉사자들이 2011년 3월 일본 이와테현 오후나토시 쓰나미 피해 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더멋진세상을 외교통상부 산하 비정부기구(NGO)로 등록하기 위해 정관을 작성했다. 복잡한 행정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래도 요소요소에서 돕는 이들을 만나 ‘과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구나’라고 느꼈다. 외교통상부 국세청을 거치고 법원 등기 등을 하느라 1년 넘게 걸려야 하는데, 2010년 12월 29일 두 달 만에 가까스로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단법인 설립 허가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NGO 설립과 운영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란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했다. 설립 비용은 이사진과 교회 등에서 채워 주셨고 나머지 사소한 경비는 어쩔 수 없이 사비를 털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이 놀랍게 채워 주셨다. 때맞춰 어느 기업체에서 고문직을 제안해 온 것이다. 고문료로 소소한 행정경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더멋진세상의 영원한 자원봉사자가 되기로 서원했다. NGO 대표인 만큼 무보수로 일하자고 다짐해 이를 지켜오고 있다.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리히터 규모 9.1의 강진과 함께 대규모 해일이 일었다. 높이 10m의 파도가 태평양 연안을 덮쳤다.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였다. 설상가상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선 피폭 위험까지 더해졌다.

더멋진세상의 첫 번째 사역이 시작됐다. 즉시 온누리교회 2000선교본부의 도움을 받아 긴급구호팀을 꾸렸다. 청년 30명과 함께 진앙에서 동북부로 150㎞ 떨어진 이와테현에 도착했다. 현장은 참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직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던지 일본인 자원봉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전체가 충격을 받을 만큼 피해가 광범위했다.

이재민들은 학교 건물에 단체로 수용돼 있었다. 모두 몸만 간신히 빠져 나와 먹고 입을 것이 태부족했다. 일본 정부에서 겨우 주먹밥만 나누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언덕 위 교회에 자리를 잡고 침낭에서 새우잠을 자며 복구 작업을 했다. 틈틈이 떡국을 끓이고 파전을 부쳐 이재민들과 나눴다. 따뜻한 국물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청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대사가 돼 몰려드는 주민들을 맞이했다. 아침에는 눅눅한 공기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밤이면 종일 흘린 땀으로 몸에서 쉰내가 진동했다.

계획했던 3주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한국에선 방사능 유출과 여진 문제가 크게 보도됐고, 청년 자원봉사자들의 부모들이 발을 구르며 귀국을 종용했다. 귀국을 위해 짐을 정리하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찾아와 촉촉해진 눈으로 인사를 했다. 그들은 “과거 우리가 당신들 나라에 몹쓸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달려와 우리를 정성껏 돌봐줬으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