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한·미관계는 ‘가스라이팅’ 닮아… 동맹에 중독됐다”

입력 2021-03-31 04:03

“70년의 긴 시간 동안 한·미동맹은 신화가 되었고, 한국은 동맹에 중독되어 왔다. 이는 우리가 처한 분단구조와 열악한 대외 환경 아래서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가스라이팅 현상과 닮아 있다.”

김준형(사진) 국립외교원장이 30일 펴낸 책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 한·미동맹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비유하고, 한국이 “동맹에 중독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스스로 인식이나 판단을 의심하게 해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데이트폭력 등을 설명할 때 쓰인다.

김 원장은 표현에 따른 논란을 의식한 듯 ‘가스라이팅’은 보수학자가 먼저 사용한 것이고 책의 맥락을 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책에도 썼지만 일부 보수학자가 북한이 우리를 가스라이팅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압도적 존재가 상식적, 합리적, 자율적 결정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보다 40배 못 살고 약한 북한이 도발한다고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조직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우리를 허수아비로 만든다고 보지 않는다”며 “호혜적 동맹이라면 안 할 말은 있어도 못 할 말은 없어야 하는데 그간 못 할 말이 많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동맹 중독’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도 국가 간 견해의 차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고, 북한에 대해서도 비핵화에는 동의하지만 방법이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며 “이 차이 자체를 너무 불안해하는 것은 중독에 따른 금단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에 따른 한·미 관계 재정립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쿼드가) 어디로 갈지 모르고 내부적 이해관계가 있는데 참여해야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보고, 중국을 겨냥한 군사동맹으로 가는 경우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와 관련해선 ‘비밀협정’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현재 각국의 내부 정치 지형은 외교를 하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매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트럼프 방식으로 하면 너무 위험해 바로 협상을 중단시킬 수 있어서 커튼 뒤로 가서 비공개로 회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의 표현으로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해당 저서는 김 원장이 학자로서 개인 소신과 분석을 담아 저술한 것”이라며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자 핵심이고, 정부는 안보와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양국의 역사적 사실 18개를 중심으로 한·미 관계를 조명했다.

김현길 김영선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