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기와의 전쟁 선포했지만… ‘보상 노린 투기’ 방지책 허점 여전

입력 2021-03-31 04:02
지난 18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에 위치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배우자의 토지 모습. 위쪽에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있다. 국민일보DB

정부가 29일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내놓은 투기 방지책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 공공개발 사업의 경우 개발계획 공표 이후에도 토지에 나무를 심거나 건물을 짓는 등의 행위를 사실상 허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10개 유형의 공공 토지개발사업 중 103개 사업이 이를 용인하고 있다. 토지 소유주가 상가 분양권 획득과 같은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할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기 우회로를 차단하려면 토지 소유주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개발계획 발표 시점의 토지 가치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법 개정을 통해 ‘개발행위제한’ 시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 재산등록처럼 과도한 행정력이 동원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도 필요성에 힘이 실린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에서 이미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국민일보가 30일 국가정책연구포털(NKIS)을 통해 확인한 국토연구원의 ‘보상투기 방지를 위한 손실보상 기준시점 연구’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상을 노린 투기 수법은 일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들이 활용한 나무 심기 외에도 다양하다. 갑자기 비닐하우스를 짓거나 조립식 상가를 건립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축산업을 매개체로 삼기도 한다. 벌통을 놓거나 염소나 돼지, 닭을 기르기 시작하는 사례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전날 발표한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은 나무 심기에 대한 규제 방안만 담았다.


토지 소유주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토지보상법상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와 영업 활동을 하는 토지의 보상은 천양지차다. 상가 임대업을 하거나 축산·영농업을 하는 땅으로 인정받게 되면 신규 상가용지를 감정가에 매입할 수 있는 우선권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받은 우선권은 웃돈을 받고 되팔 수 있다. 공시가격을 토대로 보상을 받는 일반 땅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은 공공개발용 토지로 지정되면 토지 소유주가 더 이상 개발행위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보상을 매개로 삼았다. 특정 시점을 기준점으로 삼아 당시 토지 가치에 대해서만 보상한다. 해당 시점 이후로는 토지를 개발해봤자 이득이 없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그런데 개발사업마다 이 ‘시점’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공공주택 조성 등 7개 유형의 공공 토지개발사업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절차인 ‘의견청취 공고’가 난 시점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개발 계획이 모든 국민에게 공개되는 첫 시점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다. 반면 철도 건설이나 산업단지 조성 등 103개 유형은 의견청취 공고 이후 지구지정고시 등 사업이 실제 착수되는 ‘사업인정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고부터 사업인정일까지는 짧게는 66일부터 321일까지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개발계획을 인지한 토지 소유주가 황급히 비닐하우스를 짓고 가건물을 세워도 다 보상해주도록 돼 있다. 이런 허점이 있는 이상 정부가 투기 방지를 위해 마련한 대책을 피해가는 투기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예측 가능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공 토지개발사업의 보상 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국민들 누구나 해당 토지가 개발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시점을 보상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관련 제도들을 기준에 맞춰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보고서는 “손실보상 기준시점을 ‘공익사업에 관한 계획·시행 등 공고·고시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며 “토지보상법도 이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