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직원들이 연루된 ‘원정 투기’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집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전주발 원정 투기 가담자 45명 가운데 무려 42명이 노온사동 땅을 샀다. 45명에 포함된 LH 전북본부 전현직 직원 10명 중 9명과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부위원장이 토지를 매입한 곳 역시 노온사동이었다. “전주에서 온 이들은 노온사동만 찾더라”는 현장 증언도 나왔다. 이런 거래는 모두 2017년 이후 이뤄졌다.
비슷한 시기에 수십명이 같은 동네 땅을 콕 집어 구입한 행태로 미뤄 이들 사이에 특정 개발정보가 유통됐거나 투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인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일보가 2018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광명·시흥 일대 7개 행정동(광명시 광명동·옥길동·노온사동·가학동, 시흥시 과림동·무지내동·금이동)에서 토지 소유주가 바뀐 1000㎡ 이상 토지 거래 등기부등본 563통을 분석한 결과 전주발 원정 투기는 노온사동에 집중돼 있었다. 노온사동에 대해선 2017년 이후로 범위를 넓히니 주소지가 전주이거나 LH 전북본부로 연결된 이들이 42명이었다. 2017년부터 전주 지역 사람들이 노온사동에서 사들인 땅은 7만883㎡(약 2만1400평)나 된다. 광명·시흥에서 노온사동을 제외한 지역의 토지 매수자 중 전주 관련 인물은 가학동 2명, 과림동 1명뿐이었다.
“다른 땅은 됐고, 노온사동만”
이들은 왜 노온사동을 집중적으로 사들였을까.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은 “노온사동은 호재가 많아 외지인이 대거 몰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미수 광명시의원은 “구로차량기지가 광명으로 이전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노온사동은 광역전철망이 지나는 인접지역이라 외지인의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노온사동은 서울과 가까워 시흥보다 외지인 투자 문의가 많았다는 것이다. 2024년 인근 가학동에 들어서는 광명시흥테크노밸리, 광명유통단지 등의 개발계획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호재가 있던 곳이긴 했지만 그 무렵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노온사동 땅을 보여 달라”며 지역을 특정해 문의하는 외지인이 많았다고 한다. 원정 투기 가담자들이 누군가로부터 신도시 개발 가능성 등 특정 정보를 듣고 찾아왔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광명·시흥 토지를 전문으로 중개하는 A부동산 관계자는 “‘시흥 땅도 괜찮으냐’고 물으면 ‘노온사동만 찾아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 ‘근처에 좋은 땅이 있느냐’면서 부동산 추천을 받는데, 노온사동을 찍었다는 건 확실한 정보를 듣고 왔다는 얘기”라고 했다. 인근 B부동산 관계자도 “전주에서 온 사람들은 좋은 땅보다 저렴한 땅(맹지)을 원했다. 임대하거나 농사지을 목적의 땅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묻어놓기 위한 땅’이었다. 일반적인 손님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중개업소를 통해 추천 매물을 둘러보지 않고 이미 노온사동을 정한 다음 원정에 나섰다는 말이다.
노온사동이 보상을 기대한 원정 투기에 더 적합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다른 지역과 시세는 비슷하면서도 공시지가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같은 돈을 들여 땅을 사도 노온사동은 공시지가가 높아 토지가 수용됐을 때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보상금은 실거래가가 아닌 감정평가액에 따라 달라지며, 감정평가액은 공시지가를 토대로 농작물 등 개별 토지 가치를 평가해 매겨진다.
광명시 관계자는 “노온사동 땅은 같은 용도, 같은 면적이라 해도 공시지가가 인근 시흥시 땅보다 비싸다. 광명IC가 지나는 등 교통이 편리해 임대 수익도 다른 곳보다 높다. 만약 외지인이 투자에 나섰다면 이런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A부동산 관계자도 “땅을 활용할 목적이 아니라 투자용이라면 당연히 공시지가가 높은 걸 산다”고 했다.
LH가 운영했던 ‘환지스쿨’
이 무렵 LH가 ‘환지’ 방식의 토지보상제도를 광명·시흥 일대에서 강조했다는 점도 전주발 노온사동 투기에 불을 댕긴 것으로 보인다. 환지는 공공개발로 토지가 수용되면 현금으로 값을 매겨 청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된 토지로 주는 방식이다. 대토 보상과 비슷하지만 공공이 알아서 개발한 뒤 돌려주기 때문에 시세차익은 훨씬 크다고 한다.
원정 투기 가담자들이 집중적으로 땅을 매입하기 직전인 2016~2017년 무렵 LH는 광명시, 시흥시와 함께 ‘환지스쿨’이라는 주민설명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지구가 2010년 지정됐다가 2015년 해제된 터라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LH는 ‘환지 방식의 토지 보상이 이뤄질 경우 수익성이 좋다’는 내용을 강조했고 주민들의 환지 방식 수용 동의를 일일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명에서 노온사동 환지 예상 면적은 가학동 다음으로 많았다. 가치가 비슷한 가학동의 경우 테크노밸리와 유통단지 부지로 대거 편입돼 사들일 수 있는 땅이 적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농지가 많은 바로 옆 노온사동을 택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C부동산 관계자는 “환지 보상 얘기가 나온 직후 맹지까지 비싸게 거래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원정 투기 가담자들이 어떻게 노온사동 관련 정보를 입수했는지, LH 내부자 등 특정 인물이 개입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계약일에 나타나지 않고 땅을 사들인 전주 지역 의사들이 같은 동네 주민이란 점도 지인 간 은밀하게 정보를 공유했으리란 의심을 더한다. 경찰은 이들이 거래한 중개업소까지 수사를 확대해 원정 투기 경위를 규명할 방침이다.
광명=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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