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광동 (12) 하용조 목사 “NGO 설립, 고통받는 이웃 돕자”

입력 2021-04-01 03:03
2010년 10월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 기념 예배 당시 대형 강대상 뒤로 ‘더 멋진 세상’ 문구가 보인다.

2010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투석을 받으며 요양 중이던 하용조 목사님으로부터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한달음에 달려가 목사님을 뵈었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눈빛만큼은 언제나처럼 생기가 넘치셨다. 하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는 세상을 위해 한 일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상에 나눠야 할 때입니다. 지구촌에서 재난당하고 굶주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손을 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어야 합니다. 인종 종교 지역 이념을 초월해 섬길 수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장로님이 만들어 주세요.”

당황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목사님, 저는 이 일을 맡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NGO 활동은 재정이 많이 필요한데,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사람이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제게는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재력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 목사님은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장로님, 하나님 일은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재정을 허락해 주시고 사람도 보내 주십니다. 올해 안으로 NGO를 설립해 보시지요.”

그 권위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NGO라니, 평생 정부 관료로 일한 내게 비정부기구 일을 하라니, 이게 무슨 뜻인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가운데 새벽기도회를 나가고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렸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해 10월 온누리교회 창립25주년 기념예배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드려졌다. 하 목사님은 “이제는 우리가 받은 큰 사랑을 나눠야 할 때입니다”라며 수만명 성도가 모인 자리에서 NGO 설립을 선포하시고야 말았다. 난감해진 나는 강대상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는데, 그때 그 뒤로 ‘더 멋진 세상’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온누리교회 2000선교본부로 달려갔다. 당시 본부장이던 도육환 목사님과 김창옥 전도사님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김 전도사님은 현재 더멋진세상 사무총장이다. 하나님은 더멋진세상을 위해 이미 사람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하 목사님은 NGO 이름을 ‘램프 온’(Lamp On)으로 제안하셨지만, 국제적으로 활동하려면 더 명확한 영문 이름이 필요했다. NGO 관련 전권을 위임받은 나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당시 현수막 문구 더멋진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영문으로는 ‘베터 월드’(Better World)로 하면 될 터였다. 그것이 이재훈 목사님의 아이디어로 만든 문구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