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투석을 받으며 요양 중이던 하용조 목사님으로부터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한달음에 달려가 목사님을 뵈었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눈빛만큼은 언제나처럼 생기가 넘치셨다. 하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는 세상을 위해 한 일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상에 나눠야 할 때입니다. 지구촌에서 재난당하고 굶주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손을 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어야 합니다. 인종 종교 지역 이념을 초월해 섬길 수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장로님이 만들어 주세요.”
당황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목사님, 저는 이 일을 맡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NGO 활동은 재정이 많이 필요한데,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사람이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제게는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재력이 없습니다.”
그러자 하 목사님은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장로님, 하나님 일은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재정을 허락해 주시고 사람도 보내 주십니다. 올해 안으로 NGO를 설립해 보시지요.”
그 권위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NGO라니, 평생 정부 관료로 일한 내게 비정부기구 일을 하라니, 이게 무슨 뜻인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가운데 새벽기도회를 나가고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렸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해 10월 온누리교회 창립25주년 기념예배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드려졌다. 하 목사님은 “이제는 우리가 받은 큰 사랑을 나눠야 할 때입니다”라며 수만명 성도가 모인 자리에서 NGO 설립을 선포하시고야 말았다. 난감해진 나는 강대상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는데, 그때 그 뒤로 ‘더 멋진 세상’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온누리교회 2000선교본부로 달려갔다. 당시 본부장이던 도육환 목사님과 김창옥 전도사님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김 전도사님은 현재 더멋진세상 사무총장이다. 하나님은 더멋진세상을 위해 이미 사람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하 목사님은 NGO 이름을 ‘램프 온’(Lamp On)으로 제안하셨지만, 국제적으로 활동하려면 더 명확한 영문 이름이 필요했다. NGO 관련 전권을 위임받은 나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당시 현수막 문구 더멋진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영문으로는 ‘베터 월드’(Better World)로 하면 될 터였다. 그것이 이재훈 목사님의 아이디어로 만든 문구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