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동양인이 그리운 산책길

입력 2021-03-31 04:06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비슷한 크기로 찾아오는 것일까. 현재 부다페스트에서 나의 일상은 이렇다. 매일 산책하고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바라보다가 시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시를 쓴다. 여유로운 나의 일상을 보고 회사원 친구가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인생이 훨씬 부럽다.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나처럼 미래가 불확실하지도 않고 떠돌아다닐 이유도 없으며 고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오늘도 산책하러 밖으로 나간다. 부다페스트는 작년부터 국경이 폐쇄돼 여행자들이 없다. 한국인이 아닐까 기대를 걸어볼 동양인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아름다운 풍경만이 외로이 존재할 뿐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만 동양인인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신경 쓰이는 순간이 많다. 낯선 사람을 모두 조심하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불편하고 외롭지만 여행객이 존재하지 않는 부다페스트를 보는 건 예술가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여행객이 존재하지 못하는 만큼 영업하지 못하는 상점들이 많다. 따라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가 어렵다. 상점뿐만 아니라 항공사의 문제도 여럿 생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리 예매해둔 항공권은 하루가 다르게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된다. 이러다 영영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무섭다. 하루하루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니 버거울 때가 많다.

길거리가 늘 조용하다.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해서 고독하다. 이 고독함을 견뎌내기가 힘들어 매일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집안에 틀어놓는다. 옆에서 누군가 떠드는 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나쁘기만 하면 슬플 테지만, 고독하기에 시가 잘 써진다. 고독은 시의 유일한 선생이다. 이렇듯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매번 같은 크기로 찾아온다. 그러니 크게 좋아할 일도, 크게 나빠할 일도 없는 것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